등록 : 2008.05.28 21:53
수정 : 2008.06.0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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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60년대 디자인 의자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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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따뜻하고 낡은 듯한 멋스러움 뽐내는 빈티지 가구로 집안 분위기 바꿔볼까
바야흐로 실내장식에 빈티지 스타일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대다. 서울 청담동·신사동·홍대앞 등 유행의 최전방 지대에 잇따라 생겨나는 카페들은 하나같이 빈티지 스타일로 치장하고, 새롭게 문을 연 실내장식 가게도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진열하기 바쁘다. 모던 가구 가게에서조차 슬그머니 빈티지 가구 콜렉션이 하나둘 생길 정도. 그야말로 빈티지의 절정이다. 이것은 지금 세계적인 추세로, 유럽에서도 희소한 빈티지 가구를 구매하려는 이들로 가구시장이 뜨겁다. 노출 콘크리트 또는 회벽, 부드러운 질감의 나무 테이블, 소박한 디자인의 의자로 대표되는 빈티지 스타일은 그 따뜻함과 낡은 듯한 멋스러움으로 21세기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사랑받고 있다.
세계 디자인사의 중요한 고전
이러한 빈티지 열풍을 타고 특히 주목받는 것은 1920~60년대 무렵의 디자인 의자다. 이들을 특별히 ‘디자인 의자’라 일컫는 것은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되는 개성 없는 의자들과 구분하여, 디자이너 개인의 철학과 캐릭터가 담긴 의자를 따로 칭하기 위해서다. 패션보다는 더디게 움직이는 실내장식 시장에서도 이제 샤넬이나 루이뷔통처럼 디자이너와 브랜드 이름이 거론되며, 이런 변화의 중심에 의자가 있다. 의자는 가구 디자인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가구이자,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제일 먼저 욕심을 내는 아이템이다. 특히 20~60년대의 유럽·미국의 의자 디자인은 디자인사의 중요한 고전이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이 구체화되면서 촉발된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상상력이 담겨 더욱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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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베그너의 ‘셸 의자’(왼쪽). ‘와이(Y)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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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디자이너 부부 찰스 앤 레이 임스, 덴마크의 한스 베그너, 아르네 야곱센, 핀율, 베르너 팬톤을 위시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이너, 프랑스의 장 프루베 등이 여전히 사랑받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이들의 의자는 곧 디자인 역사의 일부로, 의자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과 혁신을 담고 있다. 에펠탑을 닮은 철제 다리로 유명한 찰스 앤 레이 임스의 플라스틱 의자, 덴마크 디자인의 아버지 한스 베그너가 종이 노끈으로 깔판을 만든 와이(Y) 의자, 펠리칸 새의 익살스러운 곡선을 디자인에 담아낸 핀율의 펠리칸 의자, 30분마다 한 개씩 완성되어 팝아트의 아이콘이 된 베르너 팬톤의 팬톤 의자 …. 그 밖에도 이름을 다 열거하지 못할 각양각색의 디자인 의자와, 때로는 디자이너 미상인 빈티지 의자까지 매력적인 의자가 수두룩하다.
인테리어 잡지 기자로 일하는 동안 생긴 꿈은, 언젠가 나뭇결이 아름다운 커다란 원목 테이블에 각기 다른 디자인의 빈티지 의자를 놓아 테이블을 완성하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담고 수십 년 세월 나이가 든 의자들이 다른 듯 닮은 식구처럼 사이좋게 조화를 이룰 모습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상상 속에서나 그림을 그려볼 꿈. 빈티지 의자의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빈티지 의자는 수량이 많지 않아 경매 등을 통해 거래되며, 그 가격은 최근 더욱 오르는 추세. 천만 원대를 훌쩍 뛰어넘어 억대까지 넘나든다. 유명 디자이너가 직접 사용했거나 왕족, 스타 등이 사용했던 의자라면 가격은 다시 몇 배로 뛴다.
빈티지는 앤티크와 어떻게 다른가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빈티지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빈티지는 20~30년대 모던 디자인이 출현한 이후 생산된 오래된 가구를 뜻하며, 1900년 이전 태생인 클래식한 앤티크 가구와 구분된다. 종종 빈티지처럼 낡아보이도록 처리를 한 가구 또한 빈티지 가구라고 불리는데, 이는 ‘빈티지 스타일 가구’라는 의미이니 주의할 것.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는 세월의 더께가 멋이 되어 매력적이지만, 실상 생활 속에서 가구로 쓰기에는 가격은 물론 그 ‘낡음’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유명 가구 회사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디자인적 가치가 있는 과거의 디자인을 재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리프로덕션’ 가구라 한다. 스완 의자, 에그 의자, 팬톤 의자처럼 리프로덕션 가구가 아주 활성화된 디자인은 오리지널 빈티지의 인기가 오히려 떨어지는 편. 빈티지 가구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희소성임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제품 또한 고가라는 것이다. 스완 의자는 400만 원대, 에그 의자는 무려 800만 원대에 이른다. 할인 시즌도 없다. 그렇다고 을지로·논현동 등지의 ‘짝퉁’ 의자에 눈을 돌리지는 말도록. 디자인을 도용한 불법 제품이기도 하거니와, 가까운 미래에 국내 디자이너의 멋진 의자를 만날 기회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짝퉁’ 의자는 가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라면 금방 탄로가 난다. 이들은 진품과 달리 미묘하게 특유의 멋과 카리스마가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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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레이 앤 임스의 ‘라운지 의자’(왼쪽), 장 프루베의 ‘스탠다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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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가격표는 우리를 좌절하게 하지만 희망은 있다. 해답은 안목이다.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사랑하고 이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안목을 키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자. 다행히 리프로덕션 디자인 의자 중에서도 플라스틱 소재로 된 것들은 욕심내 볼 만한 가격이다. 찰스 앤 레이 임스의 사이드 의자가 36만 원선, 베르너 팬톤의 팬톤 의자가 34만 원선. 이처럼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200% 활용 가능한 디자인 의자를 찾아보자. 점찍어둔 의자를 분기별로 한둘씩 구입하는 것도 요령이다. 그리고 꼭 유명 디자인 의자만 고집할 필요 있나. 대중적인 가격대의 개성 있는 의자를 골라내고, 젊은 신예 가구 디자이너의 빛나는 감각을 놓치지 않고, 평범한 의자라도 페인트칠하고 리폼하여 변신시키는 등 멋진 의자를 소유할 방법은 많다.
거실의 포인트 의자로, 주방의 감각적 식탁으로
올 여름, 거실의 포인트 의자로, 주방의 감각적인 식탁 의자로, 복도에 작품처럼 놓인 조형적인 의자로 공간을 세련되게 변신시켜봄이 어떠할지. 의자야말로 가장 다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가구 디자인의 하이라이트이자,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집안 분위기를 전환시켜 줄 중요한 요소이니 말이다.
글 손영선/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촬영 협조 에이에이(aA) 디자인 뮤지엄, 사진 제공 에이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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