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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4 21:54 수정 : 2008.06.04 21:54

메뉴를 꼼꼼히 보고 주문하는 것도 카페가 주는 재미다. 사진 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밀라노의 아케이드 갈레리아를 헤매다 지쳐버렸던 때다. 우리는 미친 척하고 제법 비싸 보이는 카페의 노천 테이블을 차지해 앉았고, 다비드 상처럼 생긴 웨이터가 화사한 미소를 띠며 주문을 받으러 왔다. 기분은 내되 바가지는 쓰지 말아야지. “메뉴판 좀 보여 주세요.”웨이터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셔츠를 한 손으로 쭉 훑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메뉴판입니다.” 우리는 뜻밖의 말에 피식 웃으며, 가격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절차를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레스토랑에 비해 카페의 메뉴는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복잡한 음료나 디저트보다는 스트레이트한 커피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카페에 들어갈 때 이미 주문할 메뉴를 정해놓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밀라노에서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생략하지 않는다. 그 작은 판에서 카페의 세밀한 부분을 읽어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메뉴판에 카푸치노나 카페라테 같은 메뉴가 있는데 에스프레소가 없다면, 이들 음료가 이탈리아식이 아니라 그냥 진하게 우린 커피에 우유를 더한 경우라고 본다. 오스트리아 빈이나 일본에서는 다크 커피를 베이스로 한 훌륭한 메뉴를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게 뭐야’라고 느낄 정도의 밋밋한 커피에 실망하게 된다. 반대로 블렌드나 드립 커피의 메뉴가 전혀 없이 에스프레소 음료와 레귤러 커피만 있다면, 이 레귤러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더한 아메리칸 커피일 거라 추측하게 된다. 역시 ‘이게 뭐야’다. 차라리 패스트푸드 체인의 ‘오늘의 커피’가 나을 때가 많다.

시애틀 스타일의 카페들이 우리에게 끼친 또 하나의 긍정적 영향이라면 커다란 메뉴판을 주문대 위에 걸어놓는 문화를 퍼뜨렸다는 점이다. 얼마 전 삼청동에 새로 생긴 카페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열어보자마자 ‘죄송합니다’ 하며 꼬리를 내리고 돌아오는 것과 같은 경우는 막아주기 때문이다. 밀라노의 메뉴판 웨이터가 “마키아토에 미니 크루아상, 노천 테이블 비용과 팁을 합해” 내민 영수증에 뒤지지 않는 가격이 커피 한잔에 매겨져 있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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