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4 22:06
수정 : 2008.06.0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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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지붕과 돌바닥 그리고 이슬람 사원이 사라예보를 완성한다. 이만큼 자유분방한 도시는 없어 보였다. 사진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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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필름의 거리 ④- 사라예보
〈그라비바차〉의 끔찍한 공간에서 젊음의 열기가…
“여자 혼자 거길 간다고?” 동유럽 여행 중, 폴란드의 다음 코스로 보스니아의 서울 사라예보를 간다고 하자, 폴란드 여행자 인포메이션센터의 도우미는 펄쩍 뛰었다. 그의 말로 사라예보는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도시, 그런 곳을 여자 혼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사라예보냐?”는 그의 질책에 뚜렷한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서둘러 그곳을 나서야 했다. 그럼에도 난 사라예보로 향했다. 보스니아내전이 끝난 지가 언젠데. ‘에이 설마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물론 그의 ‘과잉반응’도 일리가 있다. 불과 십수 년 전, 이곳은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 그리고 세르비아계가 민족과 종교를 사이에 두고 내전을 일으켰던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 중 여럿은 ‘산동네엔 여전히 지뢰가 널렸으니 함부로 가지 말라’고 귀띔해 주었고, 번화가를 조금 벗어나자 건물 곳곳에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총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참 잘 왔다 싶었다. 동유럽을 실감케 하는 빨간지붕과 울퉁불퉁한 돌바닥, 이국적 풍경을 완성하는 이슬람 사원이 들어선 구시가지의 모습만으로도 사라예보는 매력적이었다. 차도르를 벗어던진 도심의 거리도 평온했다. 세련된 건물은 없었지만 낡은 아파트 곳곳에 바쁘고 활기찬 일상이 들어차 있었다. 젊은 남녀들은 스트리트 패션 화보에 실릴 정도로 센스 있는 옷차림을 했으며, 밤이 되자 모두들 클럽과 펍으로 몰려 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기 바빴다. 단언컨대, 내가 여행한 동유럽 어느 나라도 사라예보만큼 자유분방한 곳은 없어 보였다.
정작 사라예보의 ‘지금’을 알게 된 건 그곳을 떠나고 나서부터다. 여행 뒤, 나는 사라예보 출신 여성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가 그린 사라예보, <그라비바차>를 통해 또 한차례 사라예보와 만날 수 있었다. 딸 사라의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려 웨이트리스로 취직해 돈을 버는 엄마 에스마. 에스마는 사라가 세르비아군에게 강간당해 태어난 ‘악마의 씨’라는 사실을 숨긴 채 딸을 키워 왔다. 내전 중, ‘인종청소’라는 명분 아래 세르비아군은 어린 소녀부터 부녀자 가릴 것 없이 이슬람 여성들을 강간했고, 또 낙태를 못하게 군 수용소에 가둬두었다 풀어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열두 살 사라가 사춘기를 보내는 평범한 동네 ‘그라비바차’는 사라예보에서도 가장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 곧 에스마에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아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끔찍한 기억의 장소였다.
정권 탓에, 종교 때문에, 혹은 인종 때문에 지금도 많은 곳에서 전쟁과 탄압이 자행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무모하기 그지없는 이 싸움에서 언제나 가장 큰 희생양은 약한 여자라는 사실이다. 피해자이면서도 오히려 사회의 수치로 치부되어 죄인처럼 살아가는 여성들. 애써 태연하려는 명랑한 웃음 속, 혹은 그래도 희망을 찾으려는 결연한 의지 속 ‘그녀들의’ 사라예보는 여전히 신음하고 있었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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