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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4 22:22 수정 : 2008.06.08 16:15

일본의 교보문고 격인 ‘기노쿠니야’는 뉴욕의 록펠러센터에도 26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다. 기노쿠니야 2층의 벽화.〈베가본드〉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렸다.

[매거진 Esc] 서진의 뉴욕 서점 순례 4
- 미드타운에서 194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다

웨스트 빌리지의 차우바(Chow bar)라는 레스토랑에 서진씨와 함께 마주앉았다. 조개와 중국야채가 들어간 핫팟이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제가 이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메뉴예요. 치즈 브레드를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이 사람, 마치 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수염을 깎지 않아 얼굴에 그늘이 졌지만 살은 조금 더 찐 것 같다.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요?”

“가는 서점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뉴욕은 생각보다 좁아요.”

“몸은 괜찮은 거예요?”

뺨이라도 때리고 싶지만 일단, 반가운 것이 먼저다. 하루종일 그를 찾느라 서점을 뒤지다 보면 내 자신이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안심해도 된다. 이 복잡한 뉴욕에서 나는 더 혼자가 아니고, 피자조각 따위로 저녁을 때우지 않아도 된다.

“세상의 책들이 모두 불타 버린다면 말이죠 … 딱, 세 권만 구할 수 있다면 말이죠 … 선제씨는 어떤 책을 고르겠어요?”


서진씨가 맥주를 마시면서 묻는다.

Day 4 . 미드타운의 서점들

아거시 북스토어
작고한 이의 서재 방문해 몽땅 사오기도

서점으로 들어서자 마치 194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책장과 빽빽이 채워진 양장본 책들, 그리고 오래된 사진과 지도, 엽서와 그림으로 가득한 상자가 빽빽이 채워져 있다. 그곳에서 운 좋게 뭔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조차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들이다. 스트랜드 서점이 중고 서적을 양으로 승부하는 시장터라면, 이곳은 질로 겨루는 고급 백화점이다. 초판본 미국 문학도서, 사인, 오래된 지도·그림 등과 함께 역사·문학·정치 관련 중고도서도 판다. 손님보다 일하는 점원이 많아 보인다. 서점 한가운데 마련된 책상의 초록빛 스탠드 아래서 점원들은 책 속의 보물을 찾아내느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아거시 북스토어의 2층 지도 코너.

아거시는 1927년 문을 연 뒤로 세 딸이 함께 꾸려간다. 그 중 한사람인 나오미.
1927년 문을 연 뒤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세 딸이 함께 가게를 꾸려 나가는데 때마침 그중 한 사람인 나오미씨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래된 책을 많이 팔러 오는가 봐요?”

“음, 보통은 우리가 직접 오래된 아파트나, 돌아가신 분의 서재를 방문해요. 그리고 그 서재의 책을 몽땅 사오는 거죠. 저기 바닥에 있는 상자 대여섯 통이 보이시죠? 어제 햄튼의 한 서재에서 가져온 것들이에요. 지하·2층·5층으로 한번 가 봐요. 재미있는 걸 많이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사람들은 우리 가게가 1층만 있는 걸로 아는데 사실은 6층짜리 건물 전체가 책으로 꽉 채워져 있어요.”

엘리베이터마저 오래된 것이라 점원이 직접 운행하며 문을 열어준다. 5층 역사코너에는 세세하게 분류된 역사·정치 관련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이곳의 손님은 나뿐이다. 여기 꽂혀 있는 책들은 누군가의 서재에서 한 번 정도는 손길을 거친 책들이다. 그런 누군가의 책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마치 책들의 무덤처럼 느껴진다.


아거시의 문학코너. 초판본 미국 문학책 등 희귀도서가 눈에 띈다.
“익스큐즈 미. 뭔가 찾고 있는 책이라도 있으세요?”

등 뒤에서 누가 나를 불러 깜짝 놀랐다. 5층을 관리하는 점원이었다.

나는 서진씨가 내게 물었던 책 세 권에 대한 질문을 그에게 해 보았다.

“세상에 …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질문을 할 수 있죠? 정말 … 그건 대답할 수가 없어요. 세 권만 구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Argosy Book Store/ 116 East 59th St./ argosybooks.com

“제가 찾는 책은 잘 써지지 않는 소설의 힌트는 물론이고, 저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이에요. 혹시 서점에서 문득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읽다가, 그날의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없나요? 바로 그런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랍니다. 선제씨 고민도 그 책만 읽는다면 모조리 다 해결될 거예요.”

북오프
1달러짜리 수두룩… 편의점에 온 느낌

일본에 체인점 900곳을 거느린 최대 중고서점 북오프가 뉴욕 한복판에 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에만도 여섯 군데, 프랑스와 캐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곳에는 일본 책뿐만 아니라 영어 중고서적까지 취급한다. 단돈 1달러에 파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일본인 특유의 깔끔한 분위기라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중고책과 함께 중고 시디·디브이디·게임까지 팔고 2층에는 중고 만화책 섹션이 마련되어 있다. 마돈나의 ‘베드타임 스토리즈’(Bed Time Stories) 같은 3달러짜리 중고 시디를 보자 기분이 씁쓸해졌다. 테이프가 닳도록 듣던 음악인데 이런 중고시장에 나와서 손님을 기다리다니. 음악 매체가 시디에서 파일로 바뀐 뒤로, 예전의 엘피디스크가 그랬던 것처럼 시디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그러면 책도 언젠가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지 않을까? 아이팟처럼 책을 대신하는 굉장한 리더가 나와서 책은 중고서점에서만 볼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Book Off/ 14 East 41st St./ bookoff.co.jp


일본 최대 중고서점인 북오프는 뉴욕에도 있다.

“손으로 만져지는 책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봐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디지털화한다면 더는 서점이나 도서관이 있을 필요가 없겠죠. 아마 도서관에는 컴퓨터 모니터만 남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무제한으로 자료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책들을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고 해서 안심할 건 못 되죠. 역으로 그렇게 모아진 데이터가 한꺼번에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세상의 모든 책을 태워 버리는 것보다 그 데이터를 날려버리는 건 훨씬 쉽다고요. 그래서 저는 ‘그’ 책을 찾으러 다니다가, 생각해 낸 겁니다. 진정으로 소중한 책으로 채워진 도서관을 만들자고. 선제씨는 계속 서점 순례를 하세요. 대신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봐 주세요. 세상에서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에 대해서 … 그것들을 모아놓으면 굉장할 겁니다.”

기노쿠니야 서점
일본문화 관심 있는 뉴요커 모여라

우리나라에 교보·영풍문고가 있다면 일본에는 기노쿠니야 서점이 있다.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서 26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기노쿠니야는 2007년 브라이언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새 서점의 크기는 웬만한 대형서점급이다. 지하에는 일본어로 된 책들이 있고 1층에는 영어로 된 일본·아시아 관련 책들이, 2층에는 만화·예술 관련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2층에 있는 카페 자이야(Zaiya)에서 연어구이가 들어간 도시락을 먹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뉴요커들도 많이 보인다. 뉴욕에서 인구를 대비해 봤을 때, 이렇게 큰 일본 서점이 필요할까 의문스럽지만, 일본 문화가 어느덧 엘리트 문화가 되어 버린 뉴욕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질투가 날 지경이다.

Kinokuniya Book Store/ 10 West 49th St./ kinokuniya.com

서진씨는 할렘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 헤어지면서 오늘, 미드타운의 서점 순례를 마치고 시간이 나면 찾아오라며 내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해가 지자마자 나는 지하철을 타고 그가 알려준 집으로 찾아갔다. 주변에 엉거주춤하게 걸어다니는 흑인들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2층 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리자 서진씨가 나타난다.

“오늘도 서점을 많이 돌아다녔나요?”

“말도 말아요, 종아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니까.”

서진씨가 앞장선 채로 2층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계단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희미하게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마침내 문앞까지 다다랐다.

“놀라지 말아요. 책 때문에 온통 방이 비좁아져 버렸으니까.”

그는 마침내 문을 연다. 나는 그 냄새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린다. 책이다. 아주 오래된 책들이다. 마루에서 높은 천장까지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이 쌓여 있다.

서진 글·사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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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다른 서점들

만화 보물창고, 미드타운 코믹북


2층에서 내려다본 리촐리. 본래 이탈리아에 본거지를 둔 출판사다.
리촐리 Rizzoli Book Store/ 37 West 57th St./ rizzoliusa.com

이탈리아에 본거지를 둔 출판사이자 서점체인인 리촐리도 뉴욕에 자리잡고 있다. 주로 예술·디자인·건축·사진·패션·인테리어 관련 책들과 유럽 등지에서 수입된 책들도 판다. 이탈리아 판 라이센스 잡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 2층에 있는 클래식 시디 쪽도 볼 만하다.


드라마 북숍 Drama bookshop/ 250 West 40th St./ dramabookshop.com

이곳에는 연극, 영화 관련 대본, 이론 및 비평 책들을 두루 볼 수 있다. 뮤지컬과 연극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 이런 서점이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1920년대부터 명맥을 유지해 왔다는 건 대단하다.



일본 최대 중고서점인 북오프는 뉴욕에도 있다.
미드타운 코믹북 Midtown Comic book/ 200 West 40th St./ midtowncomics.com

매주 발간되는 슈퍼히어로 만화책, 피규어, 각종 잡지와 디브이디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는 곳.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 팬들(주로 남자다)도 북적거리는 만화 보물창고. 일본 만화가 대량으로 진열된 것이나 최근 미드 ‘히어로즈’의 만화책 <7th Wonder>를 보는 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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