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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교보문고 격인 ‘기노쿠니야’는 뉴욕의 록펠러센터에도 26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다. 기노쿠니야 2층의 벽화.〈베가본드〉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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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서진의 뉴욕 서점 순례 4
- 미드타운에서 194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다
웨스트 빌리지의 차우바(Chow bar)라는 레스토랑에 서진씨와 함께 마주앉았다. 조개와 중국야채가 들어간 핫팟이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제가 이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메뉴예요. 치즈 브레드를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이 사람, 마치 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수염을 깎지 않아 얼굴에 그늘이 졌지만 살은 조금 더 찐 것 같다.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요?”
“가는 서점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뉴욕은 생각보다 좁아요.”
“몸은 괜찮은 거예요?”
뺨이라도 때리고 싶지만 일단, 반가운 것이 먼저다. 하루종일 그를 찾느라 서점을 뒤지다 보면 내 자신이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안심해도 된다. 이 복잡한 뉴욕에서 나는 더 혼자가 아니고, 피자조각 따위로 저녁을 때우지 않아도 된다.
“세상의 책들이 모두 불타 버린다면 말이죠 … 딱, 세 권만 구할 수 있다면 말이죠 … 선제씨는 어떤 책을 고르겠어요?”
서진씨가 맥주를 마시면서 묻는다. Day 4 . 미드타운의 서점들 아거시 북스토어
작고한 이의 서재 방문해 몽땅 사오기도 서점으로 들어서자 마치 194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책장과 빽빽이 채워진 양장본 책들, 그리고 오래된 사진과 지도, 엽서와 그림으로 가득한 상자가 빽빽이 채워져 있다. 그곳에서 운 좋게 뭔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조차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들이다. 스트랜드 서점이 중고 서적을 양으로 승부하는 시장터라면, 이곳은 질로 겨루는 고급 백화점이다. 초판본 미국 문학도서, 사인, 오래된 지도·그림 등과 함께 역사·문학·정치 관련 중고도서도 판다. 손님보다 일하는 점원이 많아 보인다. 서점 한가운데 마련된 책상의 초록빛 스탠드 아래서 점원들은 책 속의 보물을 찾아내느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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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거시 북스토어의 2층 지도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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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거시는 1927년 문을 연 뒤로 세 딸이 함께 꾸려간다. 그 중 한사람인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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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거시의 문학코너. 초판본 미국 문학책 등 희귀도서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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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짜리 수두룩… 편의점에 온 느낌 일본에 체인점 900곳을 거느린 최대 중고서점 북오프가 뉴욕 한복판에 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에만도 여섯 군데, 프랑스와 캐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곳에는 일본 책뿐만 아니라 영어 중고서적까지 취급한다. 단돈 1달러에 파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일본인 특유의 깔끔한 분위기라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중고책과 함께 중고 시디·디브이디·게임까지 팔고 2층에는 중고 만화책 섹션이 마련되어 있다. 마돈나의 ‘베드타임 스토리즈’(Bed Time Stories) 같은 3달러짜리 중고 시디를 보자 기분이 씁쓸해졌다. 테이프가 닳도록 듣던 음악인데 이런 중고시장에 나와서 손님을 기다리다니. 음악 매체가 시디에서 파일로 바뀐 뒤로, 예전의 엘피디스크가 그랬던 것처럼 시디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그러면 책도 언젠가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지 않을까? 아이팟처럼 책을 대신하는 굉장한 리더가 나와서 책은 중고서점에서만 볼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Book Off/ 14 East 41st St./ bookoff.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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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중고서점인 북오프는 뉴욕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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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관심 있는 뉴요커 모여라 우리나라에 교보·영풍문고가 있다면 일본에는 기노쿠니야 서점이 있다.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서 26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기노쿠니야는 2007년 브라이언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새 서점의 크기는 웬만한 대형서점급이다. 지하에는 일본어로 된 책들이 있고 1층에는 영어로 된 일본·아시아 관련 책들이, 2층에는 만화·예술 관련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2층에 있는 카페 자이야(Zaiya)에서 연어구이가 들어간 도시락을 먹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뉴요커들도 많이 보인다. 뉴욕에서 인구를 대비해 봤을 때, 이렇게 큰 일본 서점이 필요할까 의문스럽지만, 일본 문화가 어느덧 엘리트 문화가 되어 버린 뉴욕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질투가 날 지경이다. Kinokuniya Book Store/ 10 West 49th St./ kinokuniya.com 서진씨는 할렘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 헤어지면서 오늘, 미드타운의 서점 순례를 마치고 시간이 나면 찾아오라며 내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해가 지자마자 나는 지하철을 타고 그가 알려준 집으로 찾아갔다. 주변에 엉거주춤하게 걸어다니는 흑인들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2층 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리자 서진씨가 나타난다. “오늘도 서점을 많이 돌아다녔나요?” “말도 말아요, 종아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니까.” 서진씨가 앞장선 채로 2층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계단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희미하게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마침내 문앞까지 다다랐다. “놀라지 말아요. 책 때문에 온통 방이 비좁아져 버렸으니까.” 그는 마침내 문을 연다. 나는 그 냄새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린다. 책이다. 아주 오래된 책들이다. 마루에서 높은 천장까지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이 쌓여 있다. 서진 글·사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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