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8 21:50
수정 : 2008.06.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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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Limited Edition New York) 프로젝트로 현재 패션·뷰티·예술계의 유명인들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 ‘레니’ 홈페이지(leny-ico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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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외국 디자이너들의 슬로건 티셔츠, 환경기금 조성에도 활용
아직도 패션이 사치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공공의 패션’에 눈을 돌린 패션 디자이너들을 만난다면 당신의 생각이 조금은 바뀔지 모르겠다. 디자이너들은 무력 없이 그저 ‘티셔츠 한 장’으로 정치·평화·환경,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
2001년 12월호 미국판 <보그> 표지에서 모델 지젤 번천은 성조기 프린트를 하트 모양으로 표현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티셔츠는 9·11 테러 피해 복구 기금 마련을 위해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보그>와 함께 진행한 캠페인의 하나였다. 이 한 장의 티셔츠가 테러로 침체된 패션계에 활력을 줬고, 제2의 ‘아이 러브 뉴욕’(I♥NY) 티셔츠로 미국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2003년 3월 가을/겨울(F/W) 컬렉션을 맞이한 밀라노에서는 집집마다 ‘peace’(평화)라고 쓰인 무지갯빛 깃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평화의 깃발은 런웨이에서 그 효력을 발휘했다. 돌체&가바나 듀오는 쇼의 마지막 무대에서 노란색·주황색·초록색·파란색의 깃발을 모델에게 그대로 입힌 듯한 줄무늬 티셔츠를 선보여 환호를 받았다.
당시 런던 패션위크에서도 ‘슬로건 티셔츠’의 대표 주자인 영국 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이 ‘Stop War, Blair Out’(전쟁을 멈춰라, 블레어 나가라)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모델과 나란히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1984년 마거릿 대처 총리를 만나 영국 디자이너상을 받을 때에도 그는 정장 대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티셔츠를 입었다. 티셔츠의 가슴 한복판에 적힌 것은 ‘58% Don’t Want Pershing’(58%의 영국 국민들은 탄도탄을 원치 않아요)이라는 문구. 이 티셔츠를 입고 보란 듯이 총리와 악수를 하는 모습은 당시 국민의 공감을 얻어냈다.
앨 고어가 운영하는 환경보호단체는 2006년부터 기후 프로젝트의 하나로 패션을 적극 활용해 왔다. 일명 ‘레니’(Limited Edition New York) 프로젝트로 현재 패션·뷰티·예술계의 유명인들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판매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환경기금을 조성한다. 이브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인 스테파노 필라티, 메이크업 아티스트 샬롯 틸버리, 사진작가 머트&마커스,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등 수많은 인사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디자이너 랄프 로렌은 뉴욕에 암 치료와 예방을 위한 랄프 로렌 센터를 설립하고, 2000년부터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 포니 캠페인’을 꾸준히 펼치는 신사 중의 신사다. 유방암이나 에이즈 캠페인에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산뜻한 분홍색의 ‘빅 포니’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판매해 그 수익금을 유방암 관련 기관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번 시즌 국내에서에도 7가지 무지개 빛의 ‘핑크 포니 티셔츠’를 만날 수 있는데, 수익금 중 5%는 한국 유방 건강 재단과 패션지 <더블유>의 유방암 계몽 캠페인에 전달된다.
한 장의 티셔츠는 그 시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을 드러낸다. 때론 위력적인 투표권을 행사하고, 기부가 소수 가진 자들의 자선 행위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슬로건 티셔츠. 당신의 쇼핑 목록에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을 지닌 티셔츠 한 장을 더해 보는 건 어떨까. 사치라는 오명을 벗은 모두를 위한 패션을 만나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박연경/<더블유 코리아>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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