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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8 22:31 수정 : 2008.06.22 10:48

마틴록섬의 시크릿비치는 작고 심심한 천국이다. 파도가 적은 날 가운데 보이는 작은 동굴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다.

[매거진 Esc] 바람과 구름의 허락을 받아 헤엄치고
노를 저어 들어가는 필리핀 엘니도 ‘비밀의 해변’

겉으로 보기엔 거대한 섬들. 모래사장과 해변이라고 볼 수 없는 마냥 낭떠러지. 그러나 절벽과 절벽 사이에 바다가 숨쉬는 틈이 있고, 그 속에 너른 초호(라군)와 해변이 펼쳐져 있다. 2억5천만년의 세월을 머금은 엘니도의 석회암 절벽을 뚫어져라 쳐다봐야 비밀의 해변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바다 안의 바다’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건 마치 선물상자 속의 선물상자, 그 선물상자 속의 또다른 선물상자와 같다. 바다 안의 바다는 태평양 파도의 정거장이다. 헐떡이던 파도는 소음을 멈추고, 미지의 방문자도 겸손해진다. 엘니도 리조트에서 일하는 라피(30)가 말했다.

“시크릿비치(비밀해변)라고 하죠. 밖에선 보이지 않아요. 엘니도에 자주 오는 사람들도 잘 모르죠. 가 본 사람도 많지 않고 ….”

엘니도는 석회암 절벽으로 이뤄진 섬들 천지다. 원주민들은 이 절벽을 기어올라 바다제비 알을 걷는다.
손톱 만한 동굴, 배는 진입 금지!

‘시크릿비치’는 마틴록섬에 있다. 원주민 말로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 아름다운 섬 안쪽에 비밀의 해변이 숨었다.

마틴록은 엘니도의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수십미터가 훨씬 넘는 수직 절벽이 테를 두른 섬이다. 방카(필리핀 어촌 보트)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감히 접안하거나 상륙할 수 있는 해변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섬을 돌던 중 타피우탄섬 맞은편 지점의 절벽 아래 손톱만한 동굴이 포착됐다. 해수면에서 동굴 천장까지 1미터나 될까. 라피는 방카를 동굴 입구로 몰았다. 동굴 앞에서 방카를 세우고 밧줄을 던졌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절벽 모서리에 밧줄이 걸렸다.


“아래 구멍 보이시죠? 거기로 들어가는 겁니다. 배는 들어갈 수 없어요. 수영해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멋진 해변이 나타날 겁니다.”

엘니도리조트가 라겐섬에 운영하는 라겐 리조트. 해질녘 풍광이 인상적인 고급 리조트다.
배에서 내려 허우적허우적 동굴을 통과했다. 그러자 바람이 멎었다. 파도는 죽었다. 바다 안의 바다는 둥근 호수였다. 짠맛이 나는 호수. 어떻게 보면 한라산 ‘백록담’ 같았다. 사방으로 석회암 절벽이 둘러싸인 호수는 잔잔했다. 아무도 없는 해변, 백사장에 누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바다 위 특유의 하늘빛과 녹색 원시림, 그리고 비취빛 라군과 검은 절벽이다.

아무나 비밀의 해변을 볼 수는 없다. ‘비밀의 관문’을 여는 열쇠는 엘니도의 바람과 구름, 그리고 한밤의 달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썰물일 때는 파도가 잔잔할 때만 허락되고, 밀물일 때는 잠수해서 들어가야 한다. 큰 파도에 자맥질했다간 뾰족한 석회암 바위에 찔려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엘니도는 이렇게 뾰족한 석회암으로 이뤄진 다도해다. 필리핀 팔라완주의 바쿠잇만,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430㎞, 이곳에 크고 작은 섬 45개가 비취빛 바다에 점을 뿌려놓은 듯 흩어져 있다.

엘니도타운은 필리핀 어촌의 활달한 분위기가 살아 있다. 매주 수·토요일 열리는 장터에서 본 생선들.
다음은 스몰라군이었다. 스몰라군을 숨겨놓은 미니록섬은 원주민 말로 ‘작은 강’이라고 했다. 미니록 리조트에서 남쪽으로 1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다 보니 바위산과 바위산 사이 거대한 호수(바다)가 나왔다. 라피는 여기서도 “더는 배가 들어갈 수 없다”며 엔진을 껐다. 절벽에는 카약 서너 대가 묶여 있었다. 카약을 타고 들어가라는 소리. 노를 저어 깊숙한 만을 거슬러 올랐다. 석회암 절벽이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데, 스몰라군으로의 통로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헤매기를 10여 분. 가까스로 절벽 왼쪽 갯바위 뒤의 작은 구멍을 찾아냈다. 역시 카약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통로. 잠시 어둠과 빛, 이어 푸른 라군.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반지원정대처럼 노를 저어 라군을 거슬러 올라갔다. 바닷물은 늙은 뱀처럼 느리게 흐르고 카약은 한 줄기 파문을 새기며 빠르게 나아갔다. 그렇게 1㎞쯤 거슬러 올랐을까. 또다시 막다른 절벽이 나왔고, 다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동굴을 찾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거기가 스몰라군의 끝이었다.

45개의 섬, 숨은 해변과 라군들을 찾아가거나 리조트에 머무는 것만으로 일상에서 격리된다. 엘니도의 장점이다.
비밀의 해변은 많다. 캐들라오섬의 캐들라오라군은 산뜻하고 귀여운 산호초 정원이다. 맹그로브 나무에 둘러싸인 마카모라군은 해질녘이면 지저귀는 새소리로 시끄럽다. 미니록섬의 빅라군은 유명세가 있어서 하루에도 여남은 그룹이 들르지만, 그래도 시크릿비치처럼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희귀 아이템’이다. 엘니도는 필리핀 최대의 해양보호 구역이다. 비밀의 해변을 ‘수색’하면서 200여종의 열대어, 100여종의 산호, 그리고 바다거북과 돌고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멸종위기종인 해우(바다소), 녹색바다거북 등도 산다.

열대어 200여종과 산호 100여종이 서식한다. 운이 좋으면 바다거북이나 돌고래도 볼 수 있다.
탐험 원하는 신혼여행객에게 강추

엘니도는 신혼여행 목적지로 잘 알려졌다. 보통 신혼여행자들은 엘니도의 유일한 휴양형 리조트인 미니록이나 라겐에서 사나흘 묵고 떠난다. 두 리조트가 미니록섬과 라겐섬의 단 하나밖에 없는 거주지이자 숙박시설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고립 속의 평화’를 느끼지만, 평화가 나태로 전락하는 순간 존재증명을 기다리는 해변과 라군을 탐험할 기회를 놓치곤 한다. 당신에게 모든 걸 제공하는 리조트에 안주하지 말고 수색하고 탐험하라. 헤엄치고 노를 저어서 비밀의 해변에 가 보라. 이곳들이야말로 정말이지 두 명만 늘어져 있기에 딱 좋은 곳이니까.

엘니도(필리핀)=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필리핀 엘니도
필리핀 엘니도 여행쪽지

물때를 알아본 뒤 떠나라

필리핀항공이 매일 두 차례 인천~마닐라를 왕복한다. 3시간40분 걸린다. 왕복 40만원 안팎.(유류할증료 제외) 부산~마닐라는 수·목·토·일요일 한차례 운항한다. 마닐라 국제공항의 국제선 터미널에서 엘니도 전용터미널로 이동한다. 아이티아이(ITI)항공이 하루 세 차례 19석짜리 프로펠러기로 엘니도를 왕복한다.

⊙여행·유학·이민 등 필리핀 종합정보를 담은 온필(onfill.com)을 참고한다. 여행자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형 사이트로 여행정보가 풍성하다. 엘니도 명소, 다이빙 포인트, 해변, 식당, 리조트 등의 연락처, 사진, 동영상, 취재기 등을 비롯해 이에 대한 사용자 리뷰가 있다. 온필에서 여행상품을 예약한다. 인천~엘니도 왕복 항공료 포함 라겐 리조트 4박5일 130만원(에어텔), 153만원(패키지). 미니록 리조트 112만원(에어텔), 143만원(패키지) 정도. 미니록 리조트는 간편하고 젊은 분위기다. 반면, 라겐 리조트는 조용하고 안락하다. 해질녘 경관이 뛰어나다.

⊙미니록과 라겐 리조트에서 해변과 라군을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6명 이하 그룹을 짜 방카를 타고 해변과 라군을 돌아다니며 스노클링, 카약, 다이빙, 암벽등반, 하이킹 등을 체험한다. 참가비와 장비대여비는 무료.

저예산 배낭여행자들은 숙박시설 10여곳이 있는 어촌마을 엘니도타운에서 묵는다. 게스트하우스급이 대부분이고 시설은 열악한 편. 엘니도타운의 여행사에서 시크릿비치·스몰라군 등 두세 군데의 라군과 비치를 방문하는 ‘아일랜드 호핑투어’(점심 포함)가 1인당 600~700페소(100페소=2400원)다. 스노클링 장비, 카약 등을 따로 빌려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부두 근처 ‘엘니도 부티크앤아트 카페’가 배낭여행자의 종합안내소 격이다. 환전과 투어·항공 예약 등을 대행한다.

시크릿비치와 스몰·빅라군 등에 가기 전엔 물때를 알아본 뒤 떠난다. 사전에 라겐·미니록 리조트 액티비티센터에 얘기하면 적당한 시간대로 조정해준다. 점심 도시락과 돗자리를 준비해 가는 것도 ‘비밀 해변’을 즐길 수 있는 방법. 물 공포가 없는 사람이라면, 구명조끼를 입거나 카약을 타고 비밀의 해변에 진입하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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