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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8 22:23 수정 : 2008.06.21 15:40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 강예나

[매거진 Esc]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 강예나
“내 직업병은 자세 이상한 사람에 매력 못 느끼는 것”

“얼굴 너무 작지 않아요?”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네번째 대담을 하러 청담동 한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김성일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번째 초대손님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자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인 강예나씨입니다. 강예나씨는 직업적으로 패션계에 속하지 않은 첫번째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발레리나와 스타일리스트가 만나서 패션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김성일씨는 이 대담을 시작할 때부터 강예나씨를 꼭 초대하고 싶다고 여러번 얘기하곤 했습니다. 강예나씨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패션과 발레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게 김성일씨의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대담이 시작되자마자 그 설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담이 끝나고 나서는 그 의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죠. “물론이에요, 할 얘기가 너무 많아요!”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성일 예나씨를 처음 만난 게 4년 반 전이었죠? 예나씨가 미국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잡지화보 촬영 일로 만나게 됐죠. 당시에 예나씨가 유니버설 발레단에 다시 돌아와서 했던 인터뷰를 보고 잡지기자가 드레스를 주제로 발레리나와 화보를 찍어보고 싶었다면서 예나씨와의 화보 촬영을 기획했던 걸로 기억해요.


오프라 윈프리 닮고 싶고 주성치 좋아하고 …

강예나 맞아요. 19살 때 유니버설 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로 2년반 정도 활동하다가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로 갔죠. 그리고 다시 유니버설 발레단으로 돌아온 게 2004년이었어요. 그때 성일씨와 찍었던 화보가 제가 찍은 첫번째 패션 화보였어요. 그렇게 드레스를 차려 입고 찍은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화장은 고딕하게 하고, 검은색 토슈즈를 신고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촬영을 했죠.

사람들과 몇마디 해 보면 이 사람이 패션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데, 그때 예나씨는 얘기를 해보니까 패션에 너무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패션 행사 같은 데 가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 때부터 연락하면서 친해지게 됐지.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는 일이 시각 예술이니까 보여주는 아름다움(美)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그렇다고 명품을 쉽게 사는 건 아니지만 좋은 건 눈에 보이죠. 장인의 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발레 역시 수백년 장인들의 손을 거치며 만들어진 전통이라서 그런지 패션에서도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요. ‘패션 피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성일씨였어요.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어요. 지금의 문화와 트렌드의 맨앞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저를 긴장시켜요. 저를 현실 세계로 붙잡아 주는 사람들이기도 해요. 또 발레와 패션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발레를 잘하려면 대중문화를 잘 알아야 해요. 현재 대중문화가 현재 발레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거든요.

예나씨는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티브이도 많이 보고, 잡지도 많이 봐요. 얼마 전까지 케이블 채널에서 문화 프로그램 진행도 했죠. 요즘에는 라디오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저는 무대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라디오에서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로만 얘기하는 게 매력적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발레리나가 누구냐고 물으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데,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단번에 오프라 윈프리라고 대답해요. 오프라 윈프리처럼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지는 못하지만, 약간의 꿈이라도 심어주는 게 제가 무대에 서는 이유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주성치예요. 의외죠?(웃음) 주성치는 원초적으로 웃겨요. 그런데 굉장히 현대적이에요. 원초적이지만 싸 보이지 않게 웃기는 게 천재거든요. 주성치 영화는 다 봤어요. 주성치가 내한했을 때 김정은씨와 화보 촬영을 했어요.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면, 제가 ‘김정은씨 너무 부럽다!’고 몇번이나 그랬거든요.

제가 주성치 쪽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화보 촬영을 주선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어쩌죠?(웃음)

(웃음) 패션 역시 발레에 많은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대중문화예요. 발레와 패션은 같이 간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발레를 순수예술, 패션을 상업예술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갈래를 넘나들면서 발레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기도 해요.

실제로 스위스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은 이브 생 로랑이 의상 디자인을 해주기도 하고, 크리스티앙 디오르도 무대 의상을 많이 만들잖아요. 유니버설 발레단도 디자이너 이정우 선생님이 우리 창작 발레 <춘향>을 할 때 한복을 개량해서 무대의상을 만들어주셨어요. 국립발레단도 이상봉 선생님이 디자인해 주신 적이 있지요. 또 패션 디자이너에게 발레리나는 뮤즈이기도 해요. 아름다움은 통하는 거니까요.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 강예나
예쁜 의상과 춤추기 좋은 의상은 달라

발레리나의 몸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굴은 인형처럼 작고 목과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죠. 옷을 입혀 보면 일반적인 모델의 몸과는 너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아름다워요. 소녀의 몸도 아니고 성숙한 여자의 몸도 아닌, 딱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이 발레리나의 신체 사이즈를 재어보면 놀랄 거예요. 발레리나는 튜튜에 토슈즈를 신고 딱 섰을 때 다리 선이 너무 아름다워요. 발레의 아름다움은 특히 발레리나의 옷에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발레리노는 몸을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지만 발레리나는 적절하게 낭만적이고 우아한 의상을 입잖아요. 가끔 왕관도 쓰고.(웃음)

발레복 하면 보통 고전적인 작품이나 낭만적인 작품의 의상을 생각하지만 현대적인 작품을 보면 획기적인 의상도 많아요. 저도 별별 의상을 다 입어봤어요. 아메리칸발레 시어터에 있을 때 새로운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귀족 역을 맡았어요. 새로운 버전인 만큼 의상도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서 만들었죠. 그때 발레복은 제 옷 하나만 보더라도 참 대단했어요. 비단에 크리스털로 되어 있었고, 속 레이스까지 다 손으로 만든 옷이었죠. 문제는 발레복이 너무 무거워서 8번 공연을 하니까 무릎이 아프더라고요. 예쁜 의상과 춤추기 좋은 의상은 너무 다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그 발레복은 박물관에 들어가도 될 정도였는데.(웃음)

항상 궁금했던 게 있는데, 발레리나들은 발목을 꺾어 가면서 항상 토슈즈를 신잖아요. 그럼 하이힐을 신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편해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이힐이 아무리 불편해도 토슈즈만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발레리나에게 발은 생명이나 다름없으니까 오래 신지는 않아요. 저는 하이힐을 즐기는 편이에요. 물론 굽이 얇지 않은 걸로요.

평소에 예나씨를 보면 두 가지 스타일이 보여요. 재클린 케네디 같은 우아한 스타일과 오드리 헵번 같은 여성스러운 스타일. 재클린 케네디처럼 선이 괜찮은 옷을 많이 입고, 오드리 헵번처럼 로맨틱한 원피스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겠죠?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 강예나
미니스커트에 12㎝ 하이힐 신는 꿈

예전에는 청바지를 절대 입지 않았어요. 청바지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요즘에는 나이가 들면서 청바지를 멋스럽게 입는 것도 좋아 보여요. 어느 정도 취향이 변하기도 했죠. 저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편이지만 발레리나 중에서 힙합 옷이나 가죽 재킷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스타일이 저에게는 남의 옷 같기도 해요. 좋아 보여서 시도를 하긴 했지만 막상 입고 나가려면 너무 어색해. 솔직히 제 꿈은 미니스커트에 12㎝ 하이힐을 신고 딱 나타나는 거예요. 열정은 도발적이지만 막상 해 보려면 잘 안 되니까.(웃음)

예나씨가 미니스커트 입은 거 본 적 있잖아요. 그때 다리가 너무 곧아서 거의 일자인 걸 보고 놀랐어요. 발레리나는 서 있을 때 발레리나 표시가 너무 나요. 특히 다리 모양이 그렇고. 너무 자세히 봤나?(웃음)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생긴 직업병 하나가 이렇게 사람들을 볼 때 스타일이나 패션을 보게 되는 거거든요.

저희도 그래요. 거울을 딱 보면 선을 먼저 보게 돼요. 제가 매력을 느꼈던 남자들 중에 몸이 구부정한 사람은 없었어요. 사람들을 관찰하고 움직임을 모방하는 게 직업이라서 그런지 그 사람의 자세나 제스처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자세가 이상한 사람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직업병의 하나 아닐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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