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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 포트의 맛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카페 〈새바람이 오는 그늘〉. 사진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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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가끔은 하나의 물건이 인생을 만들어낸다. 아스토르 피아소야(피아졸라)의 탱고는 뉴욕의 말썽쟁이 꼬마 손에 쥐어진 반도네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나란히 서기엔 부끄럽지만, 나의 커피 인생 역시 물건 하나가 시동을 걸었다. 유럽에서 귀국하던 지인이 건네준 은빛의 팔각 주전자, 모카 포트가 그 물건이다. 1933년 알폰소 비알레티가 만들어낸 모카 엑스프레소(Moka Expresso)는 당대 이탈리아 정신의 상징이었다. 모카의 몸을 이루는 알루미늄처럼 가볍고 빠르게, 그 입에서 토해져 나오는 카페인처럼 강렬한 각성으로 구제국들을 따라잡자. 최초의 애호가였던 파시스트들은 패퇴했지만, 모카만은 그때의 디자인과 설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모카 포트가 만들어내는 커피를 진짜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최신의 고압 기계에서 나오는 커피에 비하자면 확실히 크레마도 부족하고 맛도 밋밋하다. 그러나 어쭙잖은 짝퉁이라는 단정도 곤란하다. 제대로 다루기만 하면 어설픈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불성실한 카페보다 훨씬 나은 커피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맛 자체를 즐겨 ‘모카프레소’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완전 세척이 되지 않는 보일러 통의 커피 잔액이 맛의 풍미를 더해준다는 주장도 있다. 관건은 불 조절이다. 적당한 압력을 꾸준히 유지시키고 어느 정도 시점에는 서서히 불을 줄여 나쁜 커피가 끓어 넘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솔직히 쉽지는 않다. 스타벅스 등의 커피 교실에도 모카 포트 강좌는 자주 등장하는데, 증기를 폭발시킨 구정물 같은 것을 시음하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기가 부담스러운 작은 카페들 중에도 모카 포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선뜻 반갑다고 하기는 어렵다. 내가 굳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업소용 머신의 강력한 힘을 빌리려는 의도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깡통 로봇을 닮은 포트가 사랑스러운 주둥이로 커피를 부어내는 모습은 제법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즉석 떡볶이 가게처럼 가스레인지와 모카 포트를 내주고 직접 만들어 마시게 하는 카페는 어떨까?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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