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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 그러나 치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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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송은이네 만화가게
중·고딩과 싸우는 건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이 남자, 쿠로사와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싸움으로 한 사람은 급속도로 신뢰를 잃었고, 한 사람은 명망을 얻었다는 것. ‘찌질한’ 주인공을 내세워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극명하게 보여준 <도박 묵시록 카이지>의 작가 후쿠모토 누부유키가 그린 또 한 편의 ‘찌질이’ 만화 <최강전설 쿠로사와>의 주인공 쿠로사와는 44살 육체노동자다. 연애 한번 못 해 본데다, 친구도 없다. 휴일에는 집에서 종일 티브이를 보고, 퇴근 뒤에는 혼자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로해 온 그도 생일 저녁 홀로 밥을 먹다 “인망을 얻고 싶다. 크흑!” 하며 뼈아프게 외로움을 자각한다. 기회는 우연한 곳에서 왔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신호 정리 마네킹 ‘타로’가 차에 치이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해 부서진 조각을 붙들고 엉엉 울었는데, 그 모습이 의외로 동료들의 호감을 산 것이다. 동료들과 어울려 술집에 간 쿠로사와는 들뜬 나머지 오버하다가 중학생들과 시비가 붙고, 끌려가 죽도록 맞는다. 게다가 바지까지 벗고 비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들키고 만다. 어렵게 얻은 인망을 한 번의 굴욕으로 날려버릴 수 없었던 그는 중학생과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한다. 곡절 끝에 중학생들을 일망타진하자 이후엔 동네 불량배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가며 그는 전설이 되어간다. 적당히 타협하고, 이기면 우쭐하는 소시민 쿠로사와의 상대는 고작 중·고딩이지만 그의 싸움은 자신도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구원할 자는 자기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타인의 선의를 구걸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는 인물이 이게 뭐야, 싶게 비호감이겠지만 읽다보면 또 이만큼 그의 굴욕에 내가 고통스럽고, 그의 승리가 나의 기쁨이 될 정도로 싱크로율 높은 그림체가 없다. 채무로 고생하는 사람, 소심증 환자,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 그리고 ‘미쿡’ 민간업자들의 선의에 국민 건강을 걸고 계신 높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김송은/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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