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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의 호수 도시 코모. 〈오션스 트웰브〉의 쟁쟁한 톱스타들이 등장했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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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필름의 거리 ⑤ 이탈리아 코모
조지 클루니의 별장과 함께 <오션스 트웰브>에서 보여준 기막힌 풍경
장기여행 중, 밀라노의 한 숙소에서 손빨래를 하느라 진땀을 빼던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한테도 휴식이 필요해!’ ‘여행이 곧 휴식 아니야?’라는 질문은 짧은 휴가 때나 통용되는 말이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숙소 구하랴, 먹을 만한 식당 찾으랴, 지리 익히랴 하루가 멀다고 실랑이를 하고 나면 ‘이 놈의 여행!’하는 욕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오는 것이다. 여행이 곧 생활이 되는 적색경보령을 해제시키려면 긴급처방이 필요하다. 바로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코모로 무작정 출발하기 같은.
코모는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역사를 나서자마자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펼쳐진다. 코모의 진면목은 호수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고산도시 ‘벨라지오’에 도착하는 순간 확연히 드러난다. 번쩍거리는 밀라노 쇼핑센터들과 달리 소박한 정취를 간직한 중세풍 상점들.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대하노라면, 이곳이 과연 무뚝뚝하고 성질 급한 사람들로 유명한 이탈리아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호의적인 시선을 받으며 골목 끝에 다다르면 코모 호수가 한눈에 펼쳐진다. 아! 그때의 감격이란. 돈 많은 이들이나 탄다는 요트가 즐비하지만, 이곳은 부호들이 즐겨 찾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 칸에서의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그냥 호수가 있고, 하늘이 있고, 요트가 있으며, 데이트하는 연인이 있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가 전쟁에 패하자 무솔리니가 곧장 이곳을 찾았다고 하는데, 이 정도 평화라면 그럴 만도 했겠다.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앤디 가르시아 등 쟁쟁한 톱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영화 <오션스 트웰브>에 보면 이 기막힌 코모의 광경이 꽤 여러 차례 등장한다. 전편 ‘오션스 일레븐’의 멤버가 또다른 한탕을 꿈꾸며 활동무대를 유럽으로 옮긴 것. 이곳은 귀족 출신의 도둑 ‘폭스 나이트’(뱅상 카셀)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고 루치니 비스콘티 감독의 별장이었다는 빌라의 테라스, 클루니와 뱅상의 뒤로 코모 호수와 산이 한눈에 담긴다. 사실 코모는 클루니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영화촬영 기간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을 비롯해 프로듀서, 출연진들에게 별장을 내주었으며, 또 함께 출연한 케이시 애플렉의 갓 태어난 아기는 한 달이나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역시 풍광이 좋으니 인심도 후해지는 모양이다.
비록 내게 클루니가 별장을 내어주는 기적이 일어난다거나, 영화 속 뱅상처럼 멋진 오픈카를 타고 마을을 돌아볼 일은 없었지만 코모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 부족하진 않았다. 호화빌라를 빼면 이탈리아의 뜨거운 태양도, 맑고 푸른 호수도, 세월을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낡은 돌담도 모두 공짜 아니던가. 돌아오는 길, 난 이탈리아어로 ‘아름답고 멋진 곳’이라는 뜻의 벨라지오라는 이 마을 이름을 ‘벨라지오! 벨라지오! 벨라지오! 벨라지오! 벨라지오!’로 바꿔버렸다. 여행이 다시 일상이 아닌 감동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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