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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오일로 볶은 어란 스파게티에 비비면~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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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참치알과 소금이 빚는 ‘보타르가 디 톤노’의 마술
이탈리아 해물·생선 요리에 영암 어란을 떠올리다
“골라, 골라! 싱싱한 붉은 새우가 싸요!”
새벽 어시장이 불을 밝혔다. 시장통의 풍경은 어디나 똑같다.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 부스스한 얼굴로 주방장 주세페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카타니아 어시장은 시칠리아 제2의 어시장이다. 경상도만큼 큰 시칠리아 섬에서 제2의 어시장이라면 상상을 초월하게 크다. 물론 가장 큰 것은 주도(州都)인 팔레르모에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좌판에서 갓 잡아 올린 펄떡거리는 생선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해물을 ‘보따리상’처럼 가져와 판다면…
시칠리아는 웬만해선 양식 어패류를 먹지 않는다. 지천으로 널린 바다에서 엄청난 양의 해물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이 싼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 흔한 홍합이나 바지락, 오징어류는 상당히 비싸다. 반면, 한국에서 금값인 도미나 생참치, 송어 같은 고기는 말도 안 되게 싸서 회깨나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홀리곤 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장난처럼 생각한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다. 생선과 잡다한 해물 따위를 한국에서 가져다 팔면 시쳇말로 떼돈을 벌 것 같다는 거였다.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과 두족류, 조개, 게까지 적어도 너덧 배에서 열 배까지 값 차이가 나는 종류가 많았던 까닭이다. 물론 사업이야 실천할 요량이 없어 생각으로 끝난 것이지만, 지금도 혹시 누가 시도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흔히 이탈리아 요리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예로 마늘과 고추가 꼭 등장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해물과 생선을 요리하는 다양성도 한국과 닮은꼴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기는 ‘알’이다. 주세페가 이날 어시장에 들른 건 이 알 때문이었다. 막 배에서 갈라낸 싱싱한 참치알을 원했다. 참치알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에 쓰인다. 천일염을 술술 쳐서 그늘에 꾸덕꾸덕하게 말리면 기막힌 맛의 요리 재료가 됐다. 주세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구하는 일이었다. 한국 광고에도 나온, 소금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풍차가 도는 풍경이 바로 트라파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병대의 시칠리아 상륙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지금도 폼 나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주세페에게는 그저 최고의 소금이 나는 곳일 뿐이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야, 로베르토, 그걸 기억해!” 로베르토, 아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얘기 안 해도, 소금이라면 한 소금 하는 한국에서 온 내가 그걸 모를쏘냐. 김장 맛의 8할이 소금 맛이고, 젓갈 맛도 소금에 달려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 한국인 요리사가 아닌가 말이다. 하긴 소금으로 유세하는 곳이 유럽이다. 한국에서는 질 좋은 소금의 역사가 사그라들어 그저 염화나트륨 성분 99%가 소금 노릇을 하지만, 유럽은 소금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스코틀랜드산 천일염이라거나, 알프스산 암염 등의 고급 소금이 요리마다 다른 얼굴로 찬조출연한다. 싼 것과 비싼 것의 가격 차이가 수백 배 나는 것이 유럽의 소금인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서 이탈리아 소금을 좀 사서 써보려다가 나는 기겁을 했다. 수입상이 일러준 소금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이다. 주세페는 딱 마음에 드는 참치알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코를 벌름거리며, 살짝궁 벗겨진 이마에 땀이 막 맺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큼큼 … 이거 얼마요?” 세상 어디나 시장에선 흥정이 벌어진다. 그 기싸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지 않은가. 상인이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주세페는 달랐다. 알을 척 보곤, 북아프리카산인지 시칠리아산인지 알아맞혔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중해에서 아프리카나 시칠리아나 똑같이 어울려 배를 띄워 잡은 고기가 구별될 리 만무인데 말이다. 한국에서도 저 멀리 공해상에서야 중국 배가 잡으면 중국산이고, 한국 배가 잡으면 한국산인 고기가 있지 않겠는가. 기가 꺾인 상인은 아프리카산 알 무더기를 헐값에 주세페에게 넘겼다. 주세페는 참치알을 주방에 부려놓고 흐르는 물에 잘 씻었다. 그러고는 비장의 소금자루를 꺼냈다. 소금에서 단맛과 미네랄 촉각이 강하게 느껴졌다. 초짜인 내가 봐도 좋은 소금이었다. 소금을 술술 뿌려 그늘에 말리면 이제 최상급의 어란, 시칠리아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보타르가 디 톤노’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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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들도 한국인처럼 생선알을 즐겨먹는다.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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