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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5 21:30 수정 : 2008.06.25 21:30

올리브오일로 볶은 어란 스파게티에 비비면~ 캬!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참치알과 소금이 빚는 ‘보타르가 디 톤노’의 마술
이탈리아 해물·생선 요리에 영암 어란을 떠올리다

“골라, 골라! 싱싱한 붉은 새우가 싸요!”

새벽 어시장이 불을 밝혔다. 시장통의 풍경은 어디나 똑같다.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 부스스한 얼굴로 주방장 주세페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카타니아 어시장은 시칠리아 제2의 어시장이다. 경상도만큼 큰 시칠리아 섬에서 제2의 어시장이라면 상상을 초월하게 크다. 물론 가장 큰 것은 주도(州都)인 팔레르모에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좌판에서 갓 잡아 올린 펄떡거리는 생선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해물을 ‘보따리상’처럼 가져와 판다면…

시칠리아는 웬만해선 양식 어패류를 먹지 않는다. 지천으로 널린 바다에서 엄청난 양의 해물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이 싼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 흔한 홍합이나 바지락, 오징어류는 상당히 비싸다. 반면, 한국에서 금값인 도미나 생참치, 송어 같은 고기는 말도 안 되게 싸서 회깨나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홀리곤 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장난처럼 생각한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다. 생선과 잡다한 해물 따위를 한국에서 가져다 팔면 시쳇말로 떼돈을 벌 것 같다는 거였다.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과 두족류, 조개, 게까지 적어도 너덧 배에서 열 배까지 값 차이가 나는 종류가 많았던 까닭이다. 물론 사업이야 실천할 요량이 없어 생각으로 끝난 것이지만, 지금도 혹시 누가 시도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흔히 이탈리아 요리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예로 마늘과 고추가 꼭 등장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해물과 생선을 요리하는 다양성도 한국과 닮은꼴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기는 ‘알’이다.

주세페가 이날 어시장에 들른 건 이 알 때문이었다. 막 배에서 갈라낸 싱싱한 참치알을 원했다. 참치알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에 쓰인다. 천일염을 술술 쳐서 그늘에 꾸덕꾸덕하게 말리면 기막힌 맛의 요리 재료가 됐다. 주세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구하는 일이었다. 한국 광고에도 나온, 소금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풍차가 도는 풍경이 바로 트라파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병대의 시칠리아 상륙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지금도 폼 나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주세페에게는 그저 최고의 소금이 나는 곳일 뿐이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야, 로베르토, 그걸 기억해!” 로베르토, 아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얘기 안 해도, 소금이라면 한 소금 하는 한국에서 온 내가 그걸 모를쏘냐. 김장 맛의 8할이 소금 맛이고, 젓갈 맛도 소금에 달려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 한국인 요리사가 아닌가 말이다.

하긴 소금으로 유세하는 곳이 유럽이다. 한국에서는 질 좋은 소금의 역사가 사그라들어 그저 염화나트륨 성분 99%가 소금 노릇을 하지만, 유럽은 소금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스코틀랜드산 천일염이라거나, 알프스산 암염 등의 고급 소금이 요리마다 다른 얼굴로 찬조출연한다. 싼 것과 비싼 것의 가격 차이가 수백 배 나는 것이 유럽의 소금인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서 이탈리아 소금을 좀 사서 써보려다가 나는 기겁을 했다. 수입상이 일러준 소금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이다.

주세페는 딱 마음에 드는 참치알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코를 벌름거리며, 살짝궁 벗겨진 이마에 땀이 막 맺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큼큼 … 이거 얼마요?” 세상 어디나 시장에선 흥정이 벌어진다. 그 기싸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지 않은가. 상인이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주세페는 달랐다.

알을 척 보곤, 북아프리카산인지 시칠리아산인지 알아맞혔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중해에서 아프리카나 시칠리아나 똑같이 어울려 배를 띄워 잡은 고기가 구별될 리 만무인데 말이다. 한국에서도 저 멀리 공해상에서야 중국 배가 잡으면 중국산이고, 한국 배가 잡으면 한국산인 고기가 있지 않겠는가. 기가 꺾인 상인은 아프리카산 알 무더기를 헐값에 주세페에게 넘겼다.

주세페는 참치알을 주방에 부려놓고 흐르는 물에 잘 씻었다. 그러고는 비장의 소금자루를 꺼냈다. 소금에서 단맛과 미네랄 촉각이 강하게 느껴졌다. 초짜인 내가 봐도 좋은 소금이었다. 소금을 술술 뿌려 그늘에 말리면 이제 최상급의 어란, 시칠리아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보타르가 디 톤노’가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인들도 한국인처럼 생선알을 즐겨먹는다. 박찬일
갈치구이와의 만남도 놀라웠다오

전라도 영암 땅에는 옛날부터 어란이 유명하다. 숭어알로 5월에 만드는 어란은 발효되어 톡 쏘는 맛과 구수하고 짭짤한 맛이 “어란 좋아하면 제 논 다 잡혀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탁월하다고 한다. 오죽 영암 어란이 유명하면, 한국식품영양학회에서 <어란의 품질에 건조속풍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까지 나왔을까.

어쨌든 영암 어란처럼 탁미가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주세페의 시칠리아 어란도 뛰어난 맛이었다. 잘 말린 다음 알집 껍질을 벗기고 잘게 다져서 올리브오일에 볶는데, 그 풍미가 기막히다. 여기에 스파게티를 비비면 최고의 미식이 된다.

시칠리아 어시장에 참치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갈치구이를 만난 것도 놀라웠다. 마치 은갈치처럼 비늘이 칼처럼 반짝이는 갈치! 보기엔 너무도 먹음직스러웠지만, 이 역시 물이 다르니 맛이 달랐다. 살이 지나치게 단단해서 갈치구이 특유의 부스러지는 살맛이 없었던 것이다. 지중해 생선은 대체로 살이 여물고 단단한 편이다. 오징어 역시 그렇다. 상당히 질기고 단단하다. 오히려 회로 먹었더니 탱탱한 맛이 절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중해 사람들은 대구도 아주 좋아한다. 한국은 이미 서민은 맛도 못 볼 고급 어종이 되었지만 지중해에서는 아직은 흔한 생선이다. 먹는 법도 한국과 아주 비슷하다. 토막 내어 갖은 채소와 조개를 넣고 한국처럼 수프(찌개)를 내어 먹거나 절인 대구를 많이 쓴다. 이탈리아에서는 바칼라라고 하는 염장 대구를 먹는다. 천일염에 진하게 절여 자연 건조시킨 바칼라는 우선 한국처럼 물에 불려 소금기를 빼고 부드럽게 만든다. 이걸 올리브오일에 지지거나 가벼운 양념으로 요리한다. 한국에서 염장 대구를 먹는 법과 비슷하다. 대구는 살이 단단한데, 이걸 염장하면 살이 마치 죽죽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어 훨씬 맛이 좋다.

조개와 ‘봉골레 스파게티’의 기원

조개도 물론 좋아한다. 우리가 보통 ‘봉골레’라고 일컫는 바지락이나 모시조개가 바로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파게티 요리 중 하나인 봉골레 스파게티는 이렇게 많이 나는 조개 때문에 생겼다. 그런데 요즘은 물이 나빠지고 수확량이 줄어 값이 비싸다.

주세페의 어란으로 만든 스파게티는 늘 인기였다. ‘스파게티 알라 보타르가 디 톤노’라는 긴 이름의 이 스파게티는 특유의 짠맛과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어떤 단골은 이 스파게티가 메뉴에 등장하면, 늘 출근하듯이 들르면서 주문했다. 자그마치 250그램! 파스타의 그램수를 지정해서 시킨다는 점이 한국과 달랐지만 영락없는 곱빼기였다.

나는 한국에서 종종 이 요리를 만들어본다. 얼리지 않은 참치알을 구할 수 없으니, 싱싱한 대구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중해 바람 맛이 나지는 않았지만, 질 좋은 서해안 천일염으로 만든 국산 대구알도 썩 맛이 괜찮았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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