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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5 21:41 수정 : 2008.06.25 21:41

[매거진 Esc] 하우 투 스킨십

<카르멘 모타의 푸에코>를 보러 갔다. 열정적인 발 구르기와 손뼉 소리, 애절한 곡조의 기타 연주와 칸테(노래), 거기에 맞춰 팔과 다리를 힘차게 뻗는 댄서들의 춤을 보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훅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 무언가 아쉬웠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플라멩코는 댄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춤, 커플댄스가 아니라는 걸.

나는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십오야’에 맞춰 매스게임을 할 때도 혼자만의 비트를 만들어 흔들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운동 삼아 에어로빅을 했으며, 대학 때는 재즈댄스와 라틴댄스 학원에 다녔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가끔 록카페나 클럽에 들러 몸을 흔드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춤을 본격적으로 추고 싶어졌다. 플라멩코와 탱고 사이에서 고민하다 탱고를 택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두 춤의 차이를 잘 몰랐다. 동호회에 가입하고, 주말마다 탱고바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되었다. 탱고가 완벽한 커플댄스라는 걸. 남자 댄서의 움직임과 시선에 따라 여자 댄서가 움직이는 춤, 여자 스스로는 동작하지 않는 춤이 탱고였던 거다. 여자 댄서는 춤추는 내내 파트너가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 어느 강도로 돌리는지를 느끼고 해석해야 한다. 어떤 댄스보다 스킨십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탱고 공연에서는 댄서의 기교만큼 두 댄서 간에 흐르는 긴장감과 애틋함이 볼거리가 된다. 과연 ‘욕망과 유혹의 춤’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탱고를 추면서 아쉬웠던 것 역시 바로 그 점이었다. 지금껏 내 기분을 드러내는 춤을 춰왔던 내가, 상대방이 전하는 메시지에 따라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게 영 갑갑했다.

플라멩코 공연을 보면서 탱고를 떠올렸다. 자신의 감정에 충만해 스스로 몸짓하는 것과 상대방의 감정과 손길을 읽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마음을 전하는 방법도 이 두 가지 춤과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쪽만이 부각되었을 때는 아쉬울 수밖에 없을 테고. 그래서 내린 결론. 이 두 춤을 모두 추어야겠구나. 물론 지금은 탱고도 안 추고, 플라멩코도 시작 못했지만 언젠가는 말이다. 언젠가는.

김현주/ <코스모폴리탄>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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