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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2 19:38 수정 : 2008.07.02 19:47

(왼쪽) 지난달 출간된 책 〈특별한 도시 공부〉(티팟 펴냄). ‘디자인 리서치 스쿨’ 1기 수강생들의 작품 6개를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오른쪽) ‘디자인 리서치 스쿨’ 1기 최준우씨의 작품 ‘천변풍경’ 전시물 포스터.

[매거진 Esc]

새 화두로 떠오른 ‘디자인 리서치’… 결과물 위해 시공간·생활양식·일상까지 꿰뚫어

‘디자이너는 □□□다.’

이 네모 칸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들은 무엇일까. 제작자? 맞다. 디자이너는 도구를 가지고 뭐든 제작하는 사람이다. 창작자? 역시 맞다. 디자이너는 주어진 정보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 지금까지 디자이너의 정의는 제작자·창작자·생산자 등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을 지칭해 왔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기획자나 디자인이라는 틀에 담길 내용까지 찾아내고 기록하는 저자는 네모칸에 들어가기에는 어색하다. 그런데 기획자와 저자·연구자라는 단어가 최근 디자이너에 대한 중요한 정의로 자리잡아간다. 디자이너 정의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누군가의 파격적인 디자인도, 유명한 디자이너의 한마디도 아니다. ‘디자인 리서치’라는 방법론이다.

서울을 주제로 놓은 ‘디자인 리서치 스쿨’

‘디자인 리서치’라는 개념이 디자인계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다. 디자인 리서치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단순하다. 디자인을 하기 전에 진행되는 사전 조사. 디자인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을 미리 조사하거나, 이미 나온 디자인의 방향을 설명하고자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디자인 리서치다. 그러나 요즘 디자인계에서 논의되는 디자인 리서치는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다르다. 디자인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조사가 아니라, ‘무엇을’ ‘왜’ 디자인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주제에 따라 여러 가지 필요한 정보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이 바로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 리서치다.

시민문화 네트워크 ‘티팟’의 조주연 대표는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 리서치가 필요하다고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한다. 조 대표는 “디자이너가 비판적 사고력과 주체성을 갖고 디자인의 시작부터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그것이 디자인 리서치가 얘기하는 새로운 디자이너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조 대표가 디자인 리서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데는 2006년 진행했던 ‘디엔에이_알(dna_R) 도시문화 디자인 리서치, 안양’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디자인 리서치로 이뤄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안양이라는 도시의 시간과 공간, 생활양식을 디자인으로 촘촘하게 풀어내면서 안양 시민의 구체적인 일상을 디자인의 방법으로 바라보았고, 이는 새로운 형식의 도시연구로 이어졌다.

지난해 경남 양산시 배내골의 마을 박물관을 구상할 때도 디자인 리서치를 적용했다. 외관만 그럴듯한 디자인의 박물관이 아니라 직접 그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역사를 알아가면서 그 마을을 가장 잘 표현할 만한 열쇳말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디자인했다.



지난 4월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린 ‘디자인 리서치 스쿨’ 1기 프로젝트 전시 모습.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 리서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조 대표는 지난해 디자인 연구자인 박해천씨와 함께 ‘디자인 리서치 스쿨’을 시작했다. 박해천씨는 “‘분석하다’, ‘비평하다’, ‘디자인하다’라는 동사들이 서로 분리된 행위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몸과 마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뒤섞이고 재배치되도록 교과 과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대 앞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문을 연 ‘디자인 리서치 스쿨’은 지난해 1기 수강생이 교육을 마쳤고, 현재 2기 교육이 진행 중이다. 1기 수강생 15명 중 7명은 6개월 동안 진행된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그 중 6명은 ‘서울’을 커다란 주제로 놓고 진행된 교육 과정을 통해 작업한 디자인 리서치 전시도 열었다. 이 작업을 묶은 책 <특별한 도시 공부>도 지난달 출간됐다. 수강생들이 직접 주제를 고르고 조사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꽤 흥미롭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최준우씨는 ‘천변풍경’이라는 작업을 했다. 정릉천과 도림천 등 도시 하천을 시작부터 끝까지 직접 걸으며 지도를 만들고, 하천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부터 축대·계단·다리 등 하천을 이루는 요소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기록했다. 최준우씨는 “내 시선으로 목소리를 냈던, 힘들면서도 즐거웠던 작업이었다”며 “4~5개월 동안 디자인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와 하천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디자인 리서치 결과에 대해서도 ‘무엇을 만들겠다’고 단정짓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잘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릉천은 지금 기능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 도림천은 사람들과 조금 더 어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며 영상을 촬영한 ‘친절한 서울氏’, 건대 앞 화양동 공간의 특색과 인과관계를 추적한 ‘도시 경계, 화양동 10-1’ 등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디자인 리서치 스쿨 수강생에게 던진 커다란 주제는 ‘서울, 도시 공간’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디자인 리서치의 주제와 소재가 될 요소가 가장 많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디자인 리서치를 통한 디자인이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 지역을 디자인하는 공공 디자인, 또는 커뮤니티 디자인과도 맥이 닿는다는 것을 뜻한다. 치밀한 디자인 리서치 과정을 통한 커뮤니티 디자인이야말로 그 공간에 어떤 디자인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말해준다는 얘기다. 거꾸로 지금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공공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프로젝트의 문제를 디자인 리서치를 통해 들여다볼 수도 있다. 그 도시와 지역의 복잡한 층을 넓게, 그리고 세밀하게 조사하면서 조사 결과를 열어놓고 그 지역에 가장 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고, 무조건 간판이나 공공 시설물을 디자인해 바꿔 다는 식의 공공 디자인 사업은 그 지역을 해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 디자인·커뮤니티 디자인과도 맥 닿아

디자인 리서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까지 디자인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이 늘 해 왔던 과정인데 왜 새삼스럽게 얘기하느냐는 것. 조주연 대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관점이 다릅니다. 무엇을 왜 디자인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디자인과 디자인의 결과에 중심을 두고 바라보는 디자인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시점에서 디자인을 바라보고,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이 달라지는 거니까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 차이가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디자인 리서치 교육을 통해 주체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배출되고, 그들이 작업한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제공 상상마당 아카데미 디자인 리서치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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