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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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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송은이네 만화가게
지난주, 큰맘먹고 등록한 헬스클럽에서 ‘어머니’라 불리고 말았다. 아니라고 하기도 민망해 그냥 넘어갔는데, 그렇게 부른 트레이너가 솜털 보송한 이십대 초반이 아니었다면 진지하게 화를 낼 뻔했다. 일본은 국가가 나서서 비만 관리를 한다는데, 우리는 국민이 먹기 싫다는 고기를 정부가 먹이려 하고, 뭐 하는 거야! 급기야 나라 탓까지 하게 되었는데 우메자와 슌의 단편집 <유토피아>의 한 에피소드를 보고 그건 좀 오버임을 깨달았다. 군인이었던 한 남자가 외국에 파견되었다가 테러를 당해 12년간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깨어나 보니 모든 상황이 변해 있다. 아내가 떠난 것은 물론이고 자식도 아버지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변한 것은 안전, 건강, 장수가 최우선이 된 세상. 신문이나 잡지의 1면은 모두 건강 특집으로 꾸며지고, 심지어 시내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시위건강법의 일환이다. 이런 상황 앞에서 무시무시한 흡연 욕구가 치밀어 오르지만 담배 같은 건 당연히 금지된 지 오래다. 오랜만에 찾아온 동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용 운동기구를 꺼내 운동을 하며 대화를 한다. 사람들은 이미 국가에 몸을 관리당하는 걸 허락한 순간 마음까지 관리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토피아>에는 각기 다른 유토피아를 다룬 아홉 개의 단편이 실렸다. 국가에서 ‘M계 성적곤란자’를 위해 사디스트 ‘여왕님’을 사육하고, 커플 타투를 하고 점을 빼고 머리 모양을 바꾸면서 애인을 닮으려는 여자가 있는 낯선 유토피아들이 소개된다. 지나친 배려로 차이를 없애고 모두가 똑같아지는 세상은 황량한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그럼 작가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뭘까? ‘우주는 거북이’라는 진리를 발견해 세상의 주목을 받지만, 실은 좋아하는 여자애와 ‘한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 고교생이 등장하는 마지막 에피소드 ‘누구를 위하여 거북은 존재하나’를 보면 우주가 거북이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다는 태도 아닐까. 결국 유토피아는 각자 알아서 만들어가라는 얘기. 그러니까 몸의 ‘어머니’ 상태도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겠지 싶다. 김송은/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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