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2 19:53
수정 : 2008.07.02 19:53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솔직히 누가 뭐래도 나는 열심히 취재했던 거 같다. 그런데 9년 동안 회사에서 주는 상도 한 개 못 탔다. 한 달에 한 번씩 대여섯명한테 주는 거라 웬만하면 하나씩은 다 챙겼다. 부럽다. 그래도 차마 부당하다 울부짖지 못하는데, 내가 궁금한 건 꼭 남들이 안 궁금해하고, 남들이 특히 데스크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내가 모르니 어떻게 하겠나. 기사가 안 되는 것만 맹렬히, 눈이 퀭해지도록 심층 취재하는 것도 팔자다. 나는 그야말로 성실한 ‘삽질 노동자’였다.
2000년 봄,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전국을 뒤흔드는 중요한 집회였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뭘 취재해야 할지 몰라 손톱을 물어뜯으며 두리번거리는데 꿀차를 파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주름이 깊이 팬 얼굴에 시름이 가득한 것 같았다. 저것이야말로 서민의 애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왜 표정이 어두운지, 꿀차는 얼마나 준비했는지 맹렬 취재를 시작했다. 내 질문은 예리했고 눈매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에는 숫자가 중요하니 꿀차를 보통 때보다 몇 퍼센트나 더 준비했는지 알려 달라니까 아줌마가 숫자는 모르겠단다. 그래도 애원하니 대충 말해줬다. 중간에 불티나게 팔릴 수도 있으니 집회 내내 아줌마를 밀착 취재했다. 그 꿀차만 특히 안 팔리는 걸 수도 있으니 다른 꿀차 상인들을 틈틈이 붙들고 늘어졌다. 그날 “꿀차 아줌마 생각보다 안 팔려 울상”이라는 주제에 올인했다. 내 보고를 듣던 선배, 목소리를 깔더니 물었다. “집회에 몇 명 모였어?” “…” “누가 연단에 올라왔어?” “…” “집회 주제는 뭐고 주최 쪽 요구사항은 뭐야?” “…” “너 뭐 한 거야?” “꾸…, 꾸꿀 차”를 말하려는데 급한 선배가 말을 끊고 비명처럼 지시했다. “내가 물은 거 알아보고 보고해!” 나는 거지처럼 다른 수습기자들에게 구걸했다.
이듬해는 ‘뱀의 해’였다. 데스크가 새해 아침에 편하게 읽을 만한 뱀에 대한 따뜻한 기사를 써보라고 지시했다. 예컨대 뱀은 영묘한 동물로 시작하는 그런 읽을거리를 원했다는 걸 나는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지시를 받고 일단 강원도청에 전화해 뱀을 많이 잡는 동네를 알아냈다. 그 동사무소 공무원들을 괴롭혀 유명한 뱀탕집과 땅꾼들 연락처를 확보했다. 수십통의 전화 끝에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사를 완성했다. ‘강원도 뱀탕집 주인, “뱀탕 경기 불황, 김치처럼 세계화 노력”’이었다. 뱀탕을 알리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마감 직전 진땀을 흘리며 출고했는데 데스크가 읽더니 “미리 말을 하지 …”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 기사는 결국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지난 10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에 그냥 놀러 갔다. 그런데 또, 그 망할 놈의 궁금증이 일었다. 이 집회에 노점상들은 어떻게 모였고 얼마나 버나 …. 아무래도 내 유전자에는 노점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아로새겨져 있나 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