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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유와 얼음, 베트남 커피의 달콤함으로 여름날을 이긴다. 사진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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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 정키
요즘 ‘그늘에서 자란’(shade grown)이라는 라벨이 자주 눈에 뜨인다. 커피라는 까다로운 식물은 지구에서 태양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땅에서만 자라지만, 또 그 빛에 너무 노출되는 건 싫어한다. 바나나처럼 키 큰 식물의 그늘에 숨은 나무라야 천천히 자라며 더욱 다채로운 향을 열매에 담아 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작 방식은 주변을 민둥산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환경주의자들의 박수를 받는다. 커피나무의 심정을 절감하게 되는 계절이다. 아침 햇살이 속눈썹 끝에 닿을라치면 이불을 차고 일어나 그늘을 찾아 도피해야 한다. 나는 에어컨 씽씽 나오는 카페의 소파에 간사한 엉덩이를 걸치며, ‘셰이드 그론’으로 열대 새의 안식처를 걱정한다. 여름은 역설적이게도 얼음의 계절이다. 커피 역시 다채로운 차가움으로 내 앞에 등장한다. 열대풍의 이국 취미를 만끽하려면 베트남에서 날아온 싸구려 양철 포트를 만지작거리는 게 좋다. 프렌치 프레스는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보덤 스타일의 깔끔한 유리 포트로 바뀌었지만, 옛 식민지에서는 여전히 고전적인 향취를 피우며 열대의 여행자를 매료시킨다. 버터로 구워 캐러멜 향이 나는 커피에 얼음을 넣고 연유를 더하면 그 달달함에 온몸이 찡하다. 테이크아웃 카페에서는 프라푸치노가 한창 팔려나가는 때이기도 하다. 가늘게 간 얼음조각 사이로 스며든 커피는 묘한 질감으로 무장한 채 입속으로 뛰어든다. 프라푸치노가 든 컵을 머리 위로 들어 반짝거리는 햇빛을 투과시켜 보라. 그 다음 입속으로 들어오는 얼음조각들은 얄미운 태양을 씹어 먹는 듯 통쾌하다. 에스프레소 본연의 맛을 차갑게 변신시키고자 하는 여러 카페의 노력들도 재미있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 네 샷을 한 컵에 넣어 그 강렬함으로 냉기에 맞서고자 한 부암동 ‘드롭’의 레시피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그리운 맛은 커피 자체를 달콤한 얼음사탕으로 만들어 우유를 부어 마시는 일본 ‘미스터 도넛’의 얼음커피(氷コ一ヒ一). 왜 국내점은 이 녀석을 안 데리고 올까?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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