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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주변 금성각 맞은편의 호수다방.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괜찮겠다. 유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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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유성용의 스쿠터 다방 기행 ⑩
골드스타 금전등록기가 추억을 자극하는 청계천 호수다방과 촛불광장
스무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아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해 질 녘까지 시간이 남아 청계천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 수표교 근처를 지날 즈음, 건물 2층에 있는 호수다방 간판을 보았다. 오래된 공구상들이 모인 골목길로 들어서니 다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금성각’에서 이제 막 배달 나가는 철가방 청년이 축구공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통통통통 뛰어내려와 내 곁을 휙! 지나간다. 스쿠터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중국집 맞은편에 호수다방이 있다. 계산대 위에 있는 오래된 물건부터 눈에 들어온다. 골드스타 상표가 박혀 있다. 늙은 마담에게 물으니 등록기란다. 등록기가 뭐냐고 또 물으니 ‘돈통’이란다. 아, 가게마다 있는 금전등록기? 그나저나 골드스타란 상표가 추억거리다. 예전에는 뉴스 시작할 때 9시를 알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이런 광고 멘트가 나오곤 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
그 영감님, 요즘은 왜 안 보일까
다방이 얼마나 됐나 물으니 50년은 되었단다. 이전에는 ‘청계다방’이었는데 건물을 개축하면서 호수다방으로 이름을 바꿨단다. 하긴 청계천이 복개된 지 오래니 뭔가 새 이름이 필요하기도 했겠다. 흐르는 물이 멈췄으니 호수가 된 건가? 텅 빈 다방을 둘러보다 손님들은 좀 있냐고 물으니 그래도 심심찮게 찾아주는 단골 영감님들이 꽤 된단다. 요새는 영감님들 다닐 곳이 없어서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기도 한단다. 어떤 영감님은 이 다방이 생긴 이래로 거의 매일같이 출석을 해서, 다방의 역사를 자기보다 더 잘 안단다. 한데 몇 주 전부터 통 얼굴이 안 보여서 걱정이란다.
몇 해 전부터는 배달일이 거의 없어서 혼자 이 다방을 도맡아 하는데, 그래도 근처 공구점들에서 커피를 시키면 손님에게 가게 맡기고 배달해 준다. 내가 스쿠터 잘 타니까 배달일 하면 딱 맞겠다고 했더니 월급 빼주기 힘들어서 안 되겠단다. 이야기하다 식어버린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가게 문을 나섰다. 진즉에 이곳을 알았더라면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도 꽤 괜찮았겠구나 싶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개발 여파에서도 여직 살아남은 청계천 공구 골목을 돌아다녔다. 신식 청계천과 단지 몇 미터 사이를 두고 있을 뿐인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누구는 청계천이 서울의 자랑이라지만, 세트장처럼 가꿔진 청계천 걷는 일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자연 속을 걷거나 시끌시끌한 시장 골목을 걷는 게 낫지 청계천은 이도저도 아니다. 그곳은 생활의 냄새도 없고, 그렇다고 자연의 냄새도 없다. 다만 도시의 피곤에 지친 이들이 그곳을 잠시 도시의 여백으로 착각하고 쉬어간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정성을 들이지 않고 그냥 보라는 것이거나, 보면서 잠시 남의 골 빼먹는 피로를 잊어버리는 그야말로 도시다운 공간이다.
그간 스쿠터로 전국의 다방들을 헤집고 다닐 때 느낀 게 있다면 오라는 곳보다 굳이 오라고 소리하지 않는 곳이 오히려 가볼 만하다는 것이다. 문화상품을 볼 때면 먹물들은 그래 어디 한번 나를 감동시켜 보시던가 하고 팔짱 낀 자세지만 그건 돈 내고 보는 거라 그렇고, 세상에는 그냥 떡하니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진 않다. 오라고 하는 곳들은 대개 늪이다. 무슨 복고 취향이 있어서 다방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다. 오라는 곳들을 가보면 하나같이 테마공원처럼 따분해서 그곳을 피하다 보니 기울어져가는 오래된 마을이 있고 그 사이에 다방이 있고 그랬다.
친구여 ‘광장’ 다방으로 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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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용의 스쿠터 다방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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