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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6 19:07 수정 : 2008.07.16 19:07

식당에 나온 밥 남기지 않고 먹기. 작지만 지구를 뒤덮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분투다.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라이프

지구가 자기 몸이 썩어가는 것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하고 싶다면 발신인은 전 지구의 ‘막 사는’ 싱글들이 돼야 할 것이다. 싱글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충 살고 함부로 먹고 설거지를 귀찮아하는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커플이라면 마트에 서로 등 떠밀며 같이 장 보러 가는 재미, 음식 만들어 퍼 먹이는 재미, 네가 합네 내가 합네 하하호호 웃으며 설거지하는 재미로 인생을 살겠지만 싱글은 아니다. 애와 가정의 재산을 걱정하는 커플과 달리, 하루살이 인생 싱글들은 일회용품으로 몸 망가지는 것과 돈 쓰는 걸로 외로움을 달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독립한 이후에 먹은 온갖 종류의 일회용 음식, 캔음료, 통조림, 사 나른 쇼핑백만 해도 피렌체 산맥의 작은 나라 안도라공국을 뒤덮을 만한 양이다. 문제는 싱글들은 점점 늘어나고, 결혼 시기는 점점 늦어지며, 손수 만들어 먹는 음식과 비슷한 수준으로 일회용품의 질은 나날이 우수해진다는 것이다.

비비시(BBC)의 <살아 있는 지구>를 애청하고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애독하는 나였기에, 지구 환경에 불순한 이기적인 싱글 라이프를 서른이 넘어서도 계속 이어나간다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구에 저지른 만행을 벌충해야만 했다. 뭐, 식당에서 밥 먹고 들어오고 (그리고 밥을 가급적 남기지 않으며) 집 앞을 나설 때 가급적 쇼핑백과 텀블러를 들고 나가는 수준이다. 몇 주 해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지구가 몰라 보게 건강해진 건 아니고, 몰라 보게 내가 두리번두리번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환경의 적은 귀찮음이 아니라 창피함이었다. 단언하건대, 환경주의자들은 부끄러움도 무시할 만한 ‘호연지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환경운동 하는 데 이렇게 많은 양의 창피함이 필요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예를 들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식당에서 먹을 양의 밥만 달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다. “아유, 유난 떨지 말고 그냥 먹어.” 친구와 약속이 없는 날 밖에서 혼자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마음속의 악마가 이런다. “너 만약 혼자 밥 먹다가 옛날 남자친구가 아내랑 식당에 들어오면 어떡할래. 대충 플라스틱 도시락 사서 집으로 가져가.” 일회용 종이컵을 줄이기 위해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텀블러를 들고 가면 친구들이 이런다. “남자 만날 때도 그거 들고 나가는 건 아니겠지?” 한번은 멀쩡한 카페에서 플라스틱 그릇에 플라스틱 포크와 함께 케이크가 나온 걸 보고 따지다가, 창피하다는 친구들에게 강제 제압당해야만 했다. 사람 많은 서점이나 백화점에서 꼬깃꼬깃해진 쇼핑백을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 ‘여기에 넣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지구를 사랑하는 환경주의자라는 말을 기대했던 내게 쏟아진 수식어는 ‘유난 떠는 싱글’일 뿐이었다.


나지언의 싱글라이프
의식하든 안 하든 싱글 라이프는 오로지 한 가지 방향성만을 가진다. ‘언젠가 커플이 되기 위한 조신한 몸가짐.’ 기회만 닿으면 바로 팔짱을 낄 수 있게 자신을 남부끄럽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는 게 싱글 라이프의 목적인데, 환경운동은 가뜩이나 ‘없어 뵈는’ 싱글에게 인간으로서 가지는 마지막 존엄성을 버리라고 요구(?)했다. 역사는 이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 이 한 명의 싱글 지구인이, 지구의 무병장수를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교보문고 가서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영풍문고 쇼핑백 꺼냈다고.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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