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6 19:25
수정 : 2008.07.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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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사진만 남기고 간 남자. 일러스트레이션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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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아시아의 꽃미남
4대천왕·4소천왕 떠난 자리에서 홍콩 배우의 시대를 부활시키는가 했더니…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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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진관희(陳冠希·천관시)
⊙ 생년월일 : 1980년 10월 7일
⊙ 애칭 : 에디(그의 영어이름 Edison Chen에서 유래) 혹은 진관희 사건.
⊙ 특징 : 꽃미남으로서는 치명적인 ‘섹스 스캔들’을 일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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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관희를 처음 보고 떨렸던 것은 구보즈카 요스케 때문이었다. 영화 <같은 달을 보고 있다>(원제: 同じ月をみている)에서 홍콩 배우 진관희는 일본 배우 구보즈카 요스케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이미지 체인지를 보여준다. 한 남자는 어딘가 모르게 슬픔을 흔드는 인물을 연기하고, 한 남자는 슬프게도 폭력적으로 일그러진 인물을 연기한다.
구보즈카 요스케와 완벽한 이미지 체인지
영화
, <핑퐁> 등의 주연배우로 한국에서 잘 알려진 구보즈카 요스케가 그 이전까지 폭력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다면, 진관희는 영화 <같은 달을 보고 있다>에서 ‘꽃미남의 품격’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선한 슬픔을 간직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요스케는 첫사랑을 지키기에 끊임없이 유약해서 하늘하늘 흔들리는 ‘데쓰야’ 역을, 진관희는 맹목적 믿음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탈옥을 시도하는 ‘돈’을 연기한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렇지만, 맞지 않는 옷을 바꿔 입은 두 남자가 묘한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물론 영화 <무간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꽃미남’으로 정평을 받았던 진관희였기에 홍콩 배우인 그가 어수룩한 일본말로 일본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것은 아니었다. 쓸데없는 지론일지도 모르겠지만 꽃미남에게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 더욱이 같은 피부색에, 기본적으로 비슷한 문화권을 배경으로 하는 아시아의 꽃미남들에게는 말이다. 한류(韓流)는 아시아를 흐르는 하나의 흐뭇한 꽃미남 대동맥이 아닐까?
한때 홍콩 배우들이 ‘아이돌’이나 ‘꽃미남’ 같은 단어를 독식했던 시기가 있었다. 진관희 이전, 홍콩 누아르 이후. 바로 90년대 초반 등장한 ‘4대천왕’ 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여명 같은 배우들 말이다. ‘신(新) 4대천왕’도 있었다. 정이건, 고천락, 두덕위, 사정봉이 그 주인공이다. ‘4소(小)천왕’도 있었다. 임지령, 오기붕, 금성무, 소유붕이다. 꽃미남을 이런 식으로 분류계급화하다니! 유치하지만 혁명적 발상이다.(웃음)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 문화권에 속한, 다분히 혼란스러운 이미지의 홍콩 배우들은 영화나 음악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 전반을 휘어잡고 있었다. 가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진한 눈썹이나 백옥 같은 피부, 촉촉한 눈동자를 보면서 ‘중국 남자들은 원래 잘 늙지 않는 건가?’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었고 그들은 서서히 ‘욘사마’나 ‘병헌’ 등에게 아시아 스타의 왕좌를 내주었다. 그 와중에 등장한 ‘신성’(新星) 진관희는 그래서 더 옛 향수를 자극했고, 새로운 감각의 미적 아름다움을 더했으며, 거기에 자신만의 발랄함을 무기로 가진 그야말로 ‘신세대 홍콩 꽃미남 배우’였다.
진관희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영화 <무간도>에서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덕화’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덕화 옵빠’의 옛 시절이 그리운 언니들에게는 희망을, 새로운 ‘홍콩권 꽃미남’의 출현을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착한 연기력으로 자극을 주었다. 결국 출세작이 된 <무간도>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오늘날 현대 꽃미남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태’에 대해서는 당시 남녀를 불문하고 이론의 여지 없이 만장일치의 동의가 구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유덕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라는 정언적 명제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한동안, 줄곧, 거의 잊고 있었던 홍콩 꽃미남의 시대를 재도래시키는 듯했다. 그 스스로 ‘스트리트 패션’을 선도하며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가 하면, 유덕화가 ‘투~유’ 하며 한국 광고계를 흔들었던 것처럼 진관희 역시 모 대기업의 ‘디카’ 광고 모델로 활약했다. 마침내 <이니셜 D> 같은 아주 아주 블록버스터스러운 영화에 주걸륜, 여문락, 진관희가 세트로 등장했을 때는 진관희가 그 세 미남자의 ‘화룡점정’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새로운 홍콩 꽃미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가 떠난 자리엔 주걸륜이…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났다. 진관희는 어느 날 갑자기 뭇 여성들과의 뭇 사진들을 어딘가에 모르고 떨어뜨린 건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한 번에 추락해 버렸다. 그중에는 ‘신4대천왕’, 그러니까 ‘꽃미남’ 계보의 대선배 격인 사정봉의 여인도 있었다. 이제 더는 진관희를 진관희로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자문의 되풀이만 남았을 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도 끌어내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섹스 스캔들인데, 하물며 꽃미남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근데 무슨 사정을 봐 줘야 하지?) 뭐, 괜찮으려나. 누군가가 잊혀지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진관희가 떠나도 주걸륜은 남아 있으니….
이은혜/<포포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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