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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인 한국인, 오르비스 인터패션 이혜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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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이탈리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인 한국인, 오르비스 인터패션 이혜경 대표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다섯번째 주인공은 악어가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가방 브랜드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이하 콜롬보)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끌어올린 오르비스 인터패션의 이혜경 대표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 대표는 50년이 넘은 이태리 고유의 명품 브랜드이지만 다른 브랜드에 비해 유명세가 덜했던 콜롬보의 아시아 판권을 확보한 뒤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콜롬보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습니다. 한국인이 이탈리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였다는 건, 전세계 패션계에서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이 대표는 콜롬보 뿐 아니라 모피 브랜드 ‘제니’ 등 고급 브랜드의 머천다이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악어가죽만큼이나 단단하고 탄탄한 여장부 이혜경 대표와 김성일씨가 만났습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쳤던 대화로 들어가볼까요?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성일 7년 전쯤 콜롬보 런칭 때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처음에 누나를 어떻게 만났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 한번 만나도 친한 척 반갑게 인사하지만, 막상 개인적으로 연락하면서 친해지기는 힘든 게 또 패션계 사람들이잖아. 인사 정도 하면서 지내다가 우리가 급속도로 친해진 게 2년 전 쯤이지?
이혜경 응. 그 전까지는 같이 광고 작업도 하곤 했는데, ‘잘 안다’고 할만한 사이는 아니었지.
김 우리는 탐색기간을 많이 가졌다고 할까.(웃음) 일적인 관계로 만나면서 누나에 대해 잘 모르다가 같이 얘기를 할 기회가 생기고 알아가니까 누나만한 여장부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 만났을 때와 너무 다르다고 할까. 여자답고 귀엽고 발랄한 그런 이미지였는데, 알고 보니까 콜롬보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해왔던 여장부였어.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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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인 한국인, 오르비스 인터패션 이혜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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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다
이 워낙 내 스타일이 억지로 사람들과 친해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거든. 그런데 성일씨는 꼭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어.
김 누나는 지금 이 시대의 여자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빅클러치를 들고 나오잖아. 누나는 그 영화가 나오기 전인 작년부터 빅클러치를 꼭 들어야 한다고 그랬었고. 타고난 감각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늘 안목을 유지해?
이 환경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 어머니가 멋쟁이셨거든. 내가 부모님이 뒤늦게 얻은 아이라서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어. 초등학교 때부터 주름치마에 중간 정도 힐이 있는 구두를 신고 다녔어. 친척들도 모두 옷에 관심이 많았어. 작은 아버지는 전쟁 때도 바지에 주름 잡히라고 바지를 깔고 주무셨대.(웃음) 매일 같은 옷 입고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
김 어머, 나도 그랬어.
이 유치원 때 어머니가 달아준 꽃을 떼었다가 맞은 적도 있고. 어머니는 항상 ‘멋쟁이는 신발이 결정한다’고 말씀하셨어.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니까.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으면 집 밖에를 안나가셨어.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옷을 좋아하게 됐지. 그런데 막상 디자이너가 되는 건 반대하셨어. 부모님 세대에는 옷을 입는 건 몰라도 만들거나 파는 건 안된다는 생각이 있잖아. 그래서 조소과에 갔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패션을 너무 사랑해. 밀라노 컬렉션에 가면 요즘에도 전 날 잠이 안와. 내일 어떤 옷이 나올까 흥분되거든. 그런 열정 없이는 이쪽 일을 할 수 없는 것 같아.
김 나도 국문과를 나와서 패션계에 있지만, 누나도 조소과를 나와서 패션일을 하잖아. 패션을 전공하지 않고 패션계에서 일하는 건 어떤 것 같아?
이 패션을 하는 데 필요한 건 오히려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생각해. 패션의 기능적인 부분은 담당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패션은 종합예술이야. 인문학을 기본으로 여러 분야가 접목될 수 있는 게 패션이지.
김 누나는 순수예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상업적인 브랜드를 하지만 예술과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많이 하잖아. 수공예적인 작업 뿐 아니라 예술가와 함께 협업을 하는 그런 시도를 많이 하지. 예술가들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
이 4년에 걸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예술가들에게 악어 가죽과 모피를 무제한 제공하고, 마음껏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지. 악어 가죽과 모피라는 최고의 소재를 다룰 만한 기회가 없잖아. 계속 전시를 해왔고, 내년에도 전시를 계속 해나갈 거야. 전시 제목은 ‘탐욕’이야. 책으로도 나왔고.
4년에 걸쳐 진행중인 ‘탐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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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인 한국인, 오르비스 인터패션 이혜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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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누나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해. 둘이 얘기를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으면 해결을 해야 하지.(실제 인터뷰 중에도 실장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며 이것 저것을 부탁했다.) 나도 성격이 그렇잖아. 그래서 얼마 전에 우리 둘이 얘기하다가 누나가 ‘대학생들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해서 둘이 아이디어를 내고, 내가 잘 아는 케이블 방송 담당자에게 바로 전화해서 프로그램을 하게 됐잖아.
이 그래.(웃음) 제목은 <톱 크리에이터-미션! 브이엠디>로 결정했어. 예비 비주얼머천다이저(VMD) 12명을 대상으로 미션을 주면서 나중에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 이탈리아 디자인학교와도 연계해서 마지막에는 최종 후보 3명을 데리고 밀라노에도 갈 예정이야. 지금 신청을 받는데, 어떤 친구들이 올지 기대가 커.
김 이런 여인도 없지.(웃음) 그렇게 열정이 넘치는 누나를 보면 나는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 요즘 우리나라는 모든 수입 명품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국내 패션 디자이너나 패션 산업이 설 곳을 잃고 있잖아. 그런데 힘을 잃어가는 이태리 브랜드를 한국인이 다시 살려냈다는 거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 그런 게 나는 굉장히 자랑스러워.
이 직관을 믿으라는 제목의 책도 있잖아. 머천다이징은 동물적인 감각과 직관이 필요한 일이야. 콜롬보를 하기 전에 나는 이미 콜롬보 가방을 여러 개 갖고 있을만큼 콜롬보의 팬이었어. 콜롬보 브랜드를 해보고 싶어서 몇번 연락을 해도 답변이 없더니, 어느날 거짓말 같이 콜롬보 회장이 나를 찾아온 거야. 콜롬보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주변 사람들이 다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직관으로 될 거라고 생각했어. 이제 콜롬보를 들고 뉴욕 시장에 가볼 생각이야. 뉴욕이 무너지면 전세계가 다 무너지거든. 뉴욕에 가는 것도 사람들이 다 안된다고 하지만, 자신 있어.
김 그런데 악어가죽이나 모피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나는 그런 사회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러한 소재를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내는 브랜드는 그런 비난에서 조금 비켜나도 되지 않을까? 가장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악어가죽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고 싼 값에 대량생산해서 퍼뜨리는 그런 사람들인데. 악어가방이 잘 팔리니까 대중적인 디자인을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이 멸종 동물에 대한 가치를 더 떨어뜨리게 하는 것 같아.
이 패션은 꿈과 역사에 돈을 내는 거잖아. 악어가죽과 모피는 오래 전부터 절대 모방이 되지 않는 고급소재로 쓰여왔어. 그런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패션은 꿈과 역사에 돈을 내는 것”
김 예전에 공부할 때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 “너는 패션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래서 “옷, 아닌가요?” 했더니, 선생님이 “패션은 꿈을 파는 거란다” 그랬어.(웃음) 이제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해. 패션은 상업적인 거야. 팔려야 하는 거지. 그렇지만 꿈을 판다는 거야. 꿈은 예술적인 것, 아름다운 것, 그런 것들이거든. 패션 산업은 더 어렵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 더 복잡하게 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니까.
이 맞아. 정신은 예술인데,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 우리 패션이 발전하려면 머천다이저가 많이 나와야 해. 앞으로 패션에서는 머천다이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야. 디자이너의 콜렉션부터 판매까지 연결하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머천다이저야. 어렵지만, 나는 지금 내 직업이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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