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꼬의 그림일기〉
|
[매거진 esc] 송은이네 만화가게
경기도 성남에서 골재상을 하는 최 사장님 댁에는 골재를 지키는 개 진돌이, 곰돌이, 바둑이, 백순이와 닭과 거위, 그리고 만화를 그리는 셋째 딸 앙꼬가 있다. 앙꼬는 2004년 골재상 개들의 ‘동물의 왕국’과 자신의 일상을 자유로운 펜선으로 그린 <앙꼬의 그림일기>(새만화책 펴냄)를 출간했고, 만 3년이 지난 올여름 2권을 냈다. 그사이 진돌이는 권력다툼에서 밀려 가출했고, ‘바보 냄새’ 난다고 놀림 받던 앙꼬는 스물다섯 아가씨가 되었다. ‘당장 바다를 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서’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걸 보면 여느 청춘과 비슷하게 아픔도 고민도 많을 텐데, 짐짓 ‘바보 냄새’로 감상을 가린다. 한겨울 혼자 찾은 주문진에는 100년 만의 폭설이 내렸고, 어찌어찌 찾아간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다 흠뻑 젖고 만다. 손이 시려워 가게에서 600원짜리 목장갑을 사 끼고 몸을 녹이려 조개구이집에 들어가 만 원어치를 시키니 조개 일곱 개가 10분 만에 나온다. 그냥 막 웃긴 에피소드들 사이에는 고통의 포즈나 엄살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5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쓰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강력한 자기암시를 활용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 말에 혹해 잠시 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간절히 원하는 바가 없고, 또 끈기도 없었기 때문에 곧 중단하고 말았다. 행여 남이 읽을까 진정 두려웠는데, 무엇보다 그렇게 쓴 일기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목적문학이 재미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앙꼬의 그림일기에는 목적이 없다. 그래서 이글이글 불타는 야망도 치열한 자기반성도 없다. 책임감과 책받침, 카메라와 캐러멜을 혼동했던 어린 시절의 이치에 닿지 않는 기억들, 못생긴 개 백순이 시리즈, 가족의 이상한 버릇 등 성공·미래가치 같은 것과는 관계없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뿐이다. 그런데, 재밌다. 김송은/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