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6 20:32
수정 : 2008.07.16 20:32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2000년 겨울 밤, 나는 동대문운동장 근처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설사와 눈물을 함께 흘리며 생각했다. 그날 그야말로 똥꼬 찢어지는 불행은 한 전화통화로부터 시작됐다. 동대문운동장 근처 노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편법으로 사고판다는 제보가 왔다. 선배한테 들어온 제보이지만, 급파된 건 딱히 쓸데없는 수습기자였던 나였다.
그렇게 많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동대문운동장은 온통 포장마차의 붉은 휘장으로 넘실거렸다. 나는 노점상이 연루된 편법을 노점상에게 직접, 그것도 일일이 방문해 확인하는 실로 용기 있고 성실한 정공법을 구사하기로 했다. 손님으로 속이고 들어가 넌지시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 자리, 어떻게 얻었어요?” 바로 옆집으로 가면 들통날까 동쪽 끝에서 한 집 들른 뒤 서쪽 끝에서 한 집 가는 식으로 용의주도하게 동선을 짰다. 그렇게 먹은 게 거짓말 보태 우동 100그릇, 오뎅 50개다. 한 가락씩만 먹어도 우동 100가락이다. 나중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웩” 토가 쏠렸다.
하지만 내 고통을 알게 뭔가. 상인들은 심드렁하게 질문을 씹거나 “아침에 왔다”고 동문서답하거나 “왜 묻냐”고 째려봤다. 밤 9시께 시작한 취재는 12시가 넘도록 진척될 기미가 없었다. 답답한 선배가 전화해 물었다. “수습 한 명 더 보내줘?” 나는 외로워 그만 그래 달라 하고 말았다. 새벽 1시께 수습 동기가 머리끝까지 성질이 난 채 나타났고, 나는 9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게 미안하다. 그 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는 나는 자문했다. 왜 여기 있나? 우동을 먹기 위해서? 동기 괴롭히자고?
같은 해, 국방부 무기 도입에 관여해 로비를 벌인 의혹을 사고 있던 린다 김이 뉴스를 뒤덮었다. 기자들은 뭐라도 귀동냥할까 린다 김 집 앞에 진을 쳤다. 자장면도 시켜 먹고 만화책도 봤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야근하는 날 밤, 집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린다 김이 답답해져 버리고 말았다. 밤 11시께 그가 차를 타고 쏜살같이 빠져나오자 집 앞을 지키던 기자들, 난리가 났다. “빨리 쫓아!” 모두 대기 중이던 취재차를 타고 달렸다. 혼자 가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나도 따라갔다. 쫓는 게 첩보영화 한 장면처럼 박진감 넘쳤는데,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나는 대체 왜 쫓을까?” 린다 김을 만나도 뭘 물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린다 김은 언론사 차량을 대동하고 한강변을 달리며 바람을 쐰 뒤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도 유명 인사들이 검찰에 불려 들어갈 때 그 앞에 진을 친 기자들이 “한 말씀만 해 달라”며 몰려드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면 궁금하다. 진짜 중요한 한 말씀 그 자리에서 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 걸까? 다들 달려드는데 혼자만 안 물으면 이상하니까 묻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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