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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30 18:46 수정 : 2008.07.30 18:46

〈무라카미 하루키 승리보다 소중한 것〉

[매거진 esc] 이다혜의 한 줄로 한 권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문학수첩 펴냄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올림픽 성화)은 하나의 불에 불과하다.”

어렸을 때는 올림픽만 했다 하면 눈이 뭉개지도록 밤을 새워가며 텔레비전 앞을 지켰다.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저 날을 위해 몇 날 며칠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을 훈련에 쏟은, 온세계에서 몰려든 선수들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싸운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여느 때와 똑같이 중계를 보는데 너무 피곤해서 지쳤기 때문인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열심히 할까.

스포츠라는 게 따지고 보면 그렇다. 공을 던져서 잘 받아치면 좋아하는 야구나, 발을 이용해 상대 골대에 공을 차넣으면 좋아하는 축구나, 멀리 뛰면 인정받는 멀리뛰기 등 생각해 보면 묘하게 목적 지점이 허망하다. 점심을 빨리 배달하는 식당 아줌마,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수술에 성공하는 외과의, 사고를 내지 않고 빠르게 운전하는 택시·버스 운전사 같은 사람들을 위한 대회라면 실제로 도움도 되고 기술을 연마하는 보람도 있지 않을까?

10년 동안 멀리뛰기 연습을 했는데 간신히 출전한 올림픽 경기 당일 그만 멀리 뛰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냥 멀리 뛰기일 뿐인데. 비가 갠 어느 오후, 저 멀리 있는 산들이 선명하게 보이던 날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산이 저 멀리에 있고 거기까지는 모두 아파트 천지였다. 세상에 이렇게나 아파트가 많은데 계속 짓고 또 짓고, 그 아파트 하나 마련하려면 평생을 일해도 불가능하게 생겼다. 그런 멋대가리 없는 콘크리트 박스에 몇 억을 쏟아부으라니. 인간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생물일까. 불이 성화가 되고 아파트가 미래가 되고 홈런이 희망이 된다. 그걸 믿지 않으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드니 올림픽에서 발로 뛰며 쓴 에세이집 <무라카미 하루키 승리보다 귀중한 것>을 읽으며 자신의 한계와 승부를 보려고 달리고 또 달리는 선수들이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종종 한숨이 나오는 건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불은 불일 뿐인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니까 올림픽 성화가 되는 거다. 올림픽에서 잘 달리는 일의 소용은 남을 이기는 것에 있다. 더 잘 달리지 못한다면 올림픽에 나갈 수도 기억될 수도 나아가 밥벌이를 할 수도 없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안간힘을 쓰며 그 자신과의 싸움의 현장을 중계하고자 애쓴다. 머나먼 고국에서 중계되는 올림픽과 다른 올림픽을.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읽는 사람 마음에 달렸다.

이다혜 좌충우돌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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