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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만들어진 한복 바비(왼쪽)와 2000년대 이후 만들어진 한복 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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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혁의 장난감공화국
장난감을 잘 모르는 이들도 ‘바비’라는 이름에는 익숙함을 느낀다. 상품 이전에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은 29㎝의 여신. 길고 날씬한 팔과 다리, 멍청하지만은 않은 얼굴과 미소를 가진 팔등신 미녀 바비. 1959년 포니테일 머리에 줄무늬 수영복 차림으로 첫선을 보인 바비는 우리 나이로 쉰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도 변하지 않은 신선한 모습으로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금까지 약 10억개가 팔린 바비는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사의 공동 창업자인 루스·엘리엇 핸들러 부부가 딸 바바라가 가지고 노는 종이 인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형을 만들었고, 딸의 이름을 변형해 ‘바비’라는 이름을 붙여 탄생했다. 금발의 백인으로 태어난 바비는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인디언 등 다양한 인종으로 발표됐다. ‘미국 아가씨’라는 고정적 개념을 버리고 다양한 인종을 만들어낸 데는 다인종 국가 미국의 특성이 기반이 됐지만 그보다는 엄청난 양으로 늘어나는 수출량 때문이었다. 특히 1972년 뮌헨 올림픽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겪으면서 바비는 인종을 떠나 각 민족의 특성을 살려 제작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저가의 플라스틱 인형 제작비로 섬세한 표현을 하기는 한계가 있는 법.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각국의 민속 의상을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기모노, 영국의 근위병 복장, 프랑스의 결혼 예복, 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 의상 등이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한복 치마 저고리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세계 전통 의상 시리즈’에서 처음 나왔다. 장난감을 수집하며 한복을 입은 바비 인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쁨은 남달랐다. 그렇지만 그 완성도나 매무새는 그리 언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찌 그리 한복을 못 만들었는지. 저고리는 목에 바짝 붙었고 치마의 디자인도 남자인 내가 봐도 ‘영’ 아니었다. 한 마디로 때깔이 말이 아니었다. 인형의 얼굴도 남방계 갈색 피부였으니 그를 두고 결코 대한민국 바비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나 컸다. 그렇지만 미국 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이 바비 인형이 한 작은 나라의 민속 의상까지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는 것이 나름 신기하고 고맙기까지 했다. 물론 우리 한복에 비해 너무나 잘 만든, 철저한 고증까지 해서 만든 일본 기모노를 차려 입은 바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족: 2000년대 들어 ‘세계의 공주 시리즈’로 나온 한복 바비는 나름대로 제대로 된 고증을 통해 만들어져 그간의 설움을 씻어 주었다. 김혁 장난감수집가·테마파크기획자 blog.naver.com/khegel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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