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6 16:58
수정 : 2008.08.06 16:58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인터뷰가 무섭다. 거절당할까 겁나고, 허락받아도 만나서 썰렁하면 어쩌나, ‘이런 무식한 기자가 다 있냐’ 욕먹으면 어쩌나 수십 가지 걱정이 밀려온다. 섭외는 늘 숫자 째려보기부터 시작한다. 인터뷰할 상대의 전화번호를 눈으로 불태울 듯 노려본다. 난데없이 포털 뉴스를 샅샅이 뒤진 뒤 쇼핑몰로 넘어간다.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두세 번 이어 하다 화장실에 다녀와 커피도 연거푸 마신다. 이 절차를 빠짐없이 다 거치고 궁지에 몰려야 겨우 죽지 못해 전화번호를 누른다. 통화 중이면 째려보기부터 다시 시작해, 통화가 되면 말을 더듬는다. 이 길고 쓸데없는 과정을 보던 한 친구는 속 터져 대신 전화를 걸어줬다.
처음부터 거절당하기 바라는 때도 있다. 손석희 교수 같은 경우다. 먼발치에서 손 교수를 본 적 있는데 그 주변이 다 훤했다. 게다가 상대의 허점을 짚는 그 예리한 질문들은 어쩔 거냔 말이다. 그 앞에 서면 분명 나는 한없이 작아져 내 이름 하나 똑바로 말하지 못할 거다. 나는 절대 손 교수를 인터뷰할 수 없다. 다만 열성팬으로서 사인을 받을 수만 있다. 그런 손 교수를 섭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자 워밍업 강도가 보통 때보다 세 배는 뛰어 전화를 걸기도 전에 피곤해져 버렸다. 번호를 누르면서도 받지 말아 달라 빌었지만 이럴 때는 또 바로 연결된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말투로 뇌까렸다. “저는 *신문의 *기자인데요. 인터뷰해 주실래요?” 인터뷰 취지 설명은 홀딱 빼먹었다. “광우병이고 뭐고 시끄러워서 조용히 살고 싶은데요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때는 이때다, 옳다구나 중국집 배달받듯 “예, 알겠습니다”라며 툭 전화기를 놓아 버렸다. 다음 장면을 상상해 보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뚜뚜뚜뚜 …. (설득 등 다음 말을 기다리던) 손 교수 “여보세요?” 뚜뚜뚜뚜 ….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옆에 앉은 선배가 말했다. “좀 졸라 보지 그랬냐.”
거절당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때다. 한 가수가 인터뷰에 웬일로 응해줬는데, 질문엔 “최선을 다했고, 느끼는 대로 들으라”는 예의 바른 정답만 돌아왔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 두셋 횡설수설하고 나니 할말이 없어졌다. 나는 왜 이 사람이 궁금했을까가 궁금했다. 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가수가 “질문 다 하신 거 같은데 …”라고 구원의 마무리를 해 줬다.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나중에 다른 신문사 기자한테 전해들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그 가수가 매니저에게 “이거 몰래카메라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가끔 “나 기자 맞나, 왜 이럴까” 좌절에 빠질 때마다 한 선배의 위로를 떠올린다.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엄청나게 똑똑한 표정 짓는 내 친구도 인터뷰하기 전에 늘 화장실에서 머리 쥐어뜯는대.” 그래도 다행히 혼자 죽으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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