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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3 16:00 수정 : 2008.08.13 16:00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허세 어쩌구 하는 연예인 인기 검색어를 클릭했다가 ‘중2병’이라는 말을 보게 됐다. 일본의 개그맨이 만들어냈다는 신조어인 ‘중2병’은 말 그대로 중학교 2학년 때쯤, 그러니까 사춘기의 물이 오를 대로 올라 나타나는 증상, 부모가 보기에는 그저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그런 양태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반항과 멋부리기라는 그 나이 때의 가장 중요한 화두를 코믹하게 요약해 놓은 게 중2병이다.

중2병은 “다른 사람과 나는 달라”라면서 무의미한 캐릭터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몇 가지 증상을 예로 들자면, 맛있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담배도 못 피우면서 지포라이터, 인기밴드를 인기 있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우기기, 엄마가 뭐라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알았어!’라고 말하고는 듣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를 찾아 나선다 등등. 겉멋 든 중학생 남동생처럼 이 세상에서 꼴보기 싫은 것도 없지만 그 증상을 나열하고 보니 왜 이렇게 귀여운 거니?

킬킬거리다가 영화 속 중2병 환자들을 찾아봤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사춘기를 겪고 성장했듯이 영화 속 10대 캐릭터들도 대부분 중2병 증세를 보이는데, 괜한 터프함(<품행제로>), 여자 친구 앞에서 기타 연주(<말죽거리 잔혹사>) 등이 다 이 증세에 해당되겠다. 이 중 <미스 리틀 선샤인>의 고등학생 듀웨인은 연구 가치가 있는 희귀한 증세를 보여준다. 파일럿이 되기 위해 항공학교에 갈 때까지 침묵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듀웨인은 지금까지 무려 8개월째 아무 말도 안 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상의 같은 건 누구랑 하냐는, 집에 온 삼촌의 질문에 수첩을 꺼내 ‘모두 다 싫어요’(I hate everyone)라고 적어서 보여준다. “가족이랑도 얘기 안 해?” 삼촌이 재차 묻자 ‘everyone’이라는 단어에 줄을 벅벅 긋는다. 니체를 탐닉하는 그는 자신이 누구와도 다르고 누구보다 세상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슬프게도 중2병의 전형적 증상이다. 엄마 미워, 아빠 미워, 다 미워!!

나중에 듀웨인은 우연히 자신이 색맹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드디어 첫 대사를 터뜨린다. “FUCK!!!”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냥 자면서 시간이 지나갔으면 생각했다는 듀웨인은 이혼하고, 파산하고, 자살 시도까지 한 가족들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하지만 자신이 색맹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떤 인생도 완벽하게 온전할 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를 깨닫는다. 지독했던 중2병- 본인은 죽어도 인정 안 하겠지만-은 이렇게 서서히 듀웨인의 가슴속을 떠날 것이고 거기서 멀리멀리 벗어나서야 듀웨인은 자신의 중2병 시절을 웃으며 회고하겠지. ‘맞아 그때 내가 중2병이었잖아’라고 말이다. 가까스로 말문을 튼 듀웨인에게 자살을 시도했던 삼촌은 말한다. “너, 보기만큼 그렇게 멍청한 건 아냐.” 중2 남학생은 침팬지와 다름없다고 말했던 직장 남자 후배에게 십분 공감했던 나지만 이제 여드름 덕지덕지, 말 안 듣고 엉덩이에 뿔난 중2병 환자들을 만나면 말해주고 싶다. “너, 보기만큼 그렇게 멍청한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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