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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클 오디션장 난동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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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씨네21>과 함께하는 불량추억 공모전 수상작 1등 이진
반항하고 싶고, 탈출하고 싶고, 떠나고 싶었던 학창시절, 독자 여러분은 어떤 ‘불량 추억’을 가지고 계십니까. 〈esc〉가 <씨네21>과 함께 펼친 ‘불량추억 공모전’에 모인 유쾌하고 가슴 찡한 사연들을 소개합니다. 누구든지 한번쯤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사건과 사고들, 감히 엄두는 못 냈지만 한번 저질러 보고 싶었던 불량 추억 속으로 늦여름 짧은 피서를 떠나보세요.
“쟤 좀 봐. 무슨 깡으로 나왔대? 얼굴 견적만 삼천 나오겠다.” 뭣이라? 평소 실눈이 콤플렉스라 매일 쌍커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던 내 친구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어졌다. 곧바로 둘은 머리채를 부여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친구의 적은 곧 나의 적. 후방 지원에 나선 내가 온 힘을 다해 집어던진 의자가 심사위원들이 앉은 테이블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기겁을 한 심사위원들이 뛰쳐나와 뜯어말렸지만 이미 싸움은 일파만파로 번져 오디션은 난장판이 되었다. 얼마 후, 은갈치 머리가 쑥대머리로 변한 여자애의 서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춤을 추었고, 심사위원들은 뭐 씹은 얼굴로 예정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오디션을 끝내 버렸다. 덕분에 뒤쪽 순서의 아이들은 오디션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학원에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아낸 엄마가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고 다음 날 학교에서는 모금에 협조한(?)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씩씩대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펑클 멤버들은 하루 종일 조리돌림을 당했고 우리는 개교 이래 전대미문의 악질 불량서클 집단으로 찍혀 여름방학 내내 복지회관에서 치매노인 돕기 봉사활동을 해야 했다. 참, 오디션의 결과?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우리 패밀리 멤버들 중 아무도 합격하지 못했다. 아마 그날 오디션을 본 아이들 중 합격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남은 학교생활을 ‘여자 깡패’ 주홍글씨가 찍힌 채 힘겹게 보내야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만 두 번 다시 연예인 오디션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적’들의 눈물 속에 댄스 댄스 댄스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가 바뀔 때면 그때의 패밀리 멤버들을 만난다. 나와 함께 스타를 꿈꾸던 친구들 중에서는 연예계 끝자락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고, 평범한 주부가 되어 아기를 키우는 친구도 있다. 내일모레 서른을 앞둔 여자들끼리 한잔 하고 실컷 수다를 떨고 나면, 약속한 듯이 다 함께 노래방으로 향해 핑클과 에스이에스의 노래를 신청해 파트별로 열창한다. 노래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시절 맹렬히 연습했던 춤사위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몸이 춤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주책스러움에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 나오는 짓에만 목숨을 걸던 골칫덩이들이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에너지로 가득 찬 시절이었다. 얻어맞고 혼쭐이 날수록 더욱 열중했던 시절. 나이를 먹을수록 무게를 더해가는 현실 앞에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 시절의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먹을 듯 덤비는 현실 앞에 무작정 고개를 숙이는 대신 주저 없이 한 방을 날릴 수 있으리라. 이진/서울시 서초구 방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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