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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3 18:22 수정 : 2008.08.13 18:32

앗싸! 담을 넘어 노래방으로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씨네21>과 함께하는 불량추억 공모전 수상작 2등 허소아
‘야자’의 면학분위기를 도발한 그 난리부르스가 고3 레이스를 끝까지 견디게 해주었네


때는 고3, 입시지옥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던 무렵이었다. 쉼 없이 달려온 고3 레이스의 막바지, 나는 쉽사리 오르지 않는 성적에 지쳐 있었다. 그날도 한차례의 ‘모의고사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교실 분위기는 태풍을 맞은 농번기의 마을처럼 침울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문제가 어려웠는지 대부분의 아이들의 성적이 몇십 점씩 추락했고, 나도 망연자실한 얼굴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급식 도시락을 밀어냈다, 라고 왜곡된 기억으로 쓰고 싶지만 차마 순수의 시절을 더럽힐 수는 없는 법. 그 와중에도 나는 친구들이 남긴 반찬을 탐하며 젓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사냥을 다녔다. 하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풀 죽어 있었고, 힘없이 밥알을 세고 있었다. 아예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외치며 복도를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마음은 늘 생각 언저리에서 맴돌 뿐. 그저 누구의 반찬이 뭐였는가에 집중하며 고픈 배를 채웠던 것 같다.

번쩍번쩍 디스코클럽놀이를 아십니까

그렇게 식사시간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먹자마자 소화된 허망한 식욕을 달래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내 노래에 맞춰 교실 불을 껐다 켜기 시작했고, 깜빡깜빡 현란한 형광등 점화에 주변에 있던 친구들과 나는 순식간에 흥이 올라 의자와 책상 위로 올라가 막춤을 춰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번 했던 그 ‘디스코클럽놀이’를 보면서 친구들의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조금씩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리고 바라건대 다른 친구들도, 우리가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쟁자로 서로를 인식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우리는 같은 말을 듣고 같은 책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몇 달을 함께 지내 온 동지였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도 우리의 그 난리브루스를 보면서 함께 깔깔대고 웃어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아이들도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한바탕 쇼가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 시작 종이 울리기 직전, 마침 그날이 우리반 반장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생일 케이크 사서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말을 했고, 또 더러는 야자가 하기 싫다고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른 날 같았으연 그저 속으로만 했을 생각인데 그날따라 억압된 분노와 스트레스가 공통적으로 폭발한 것인지 어쩐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집단행동을 이루어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노래방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노래방, 노래방이야말로 자유와 일탈의 상징이었다. 우리가 교복을 입고 어딜 갈 수 있었겠는가. 나이트나 술집은 단속을 피해 복장과 헤어메이크업을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해야 했지만, 노래방은 갈 수 있었다. 뒷날의 엄중한 문책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날은 신이 주신 단 하루의 기회였나보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노는 것에 관심 없어 보이던 친구들도 가방을 싸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여고 시절에 다시는 없을 ‘3학년 2반 학교 탈출 노래방 잠입 사건’은 시작되었다.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두뇌 싸움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우리는 먼저 선발대를 보내 노래방 포섭의 임무를 맡겼다. 그리고 조용히, 실내화를 벗고 한 손엔 신발을 들고서 몸을 낮추고 계단을 내려가 매점 뒷길을 이용해 학교의 담을 넘었다. 어림잡아 삼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교복 치맛바람으로 휙휙 담타기를 거행했던 거다. 저녁시간에 미리 돌아간 아이들은 다음 날 우리의 작전 성공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으며 마지막까지 교실에 남아 있던 독한 놈은 고작 네 명에 불과했다.

우리는 마치 베를린 장벽이라도 넘은 것처럼, 역사적이고 장엄한 담타기의 순간을 즐기며 신나게 달려 노래방으로 향했다. 아, 난 지금도 노래방에서의 그 얼굴들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늘 긴장해 있고 늘 초조해했고 늘 불안에 떨던 친구들이 말갛고 환하게 빛나며 즐거워하던 모습들이란.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날이 없으리란 걸. 내일이 오면 또 다시 산처럼 쌓은 문제집 속에 얼굴을 파묻고 수능을 위해 그저 참고 견뎌야 한다는 걸.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일탈의 경험이 마치 기적처럼 존재했고 모두에게 그 불량 추억은 고3 레이스를 마지막까지 달리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를 혼내지 않으신 선생님의 아량

다음 날 어떻게 됐냐고? 친구들처럼 아량이 넓으신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혼내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그 노래방 사건을 떠올린다. 돌아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을 빛내주는 소중한 추억. 구석에서 수줍게 손뼉을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친구야,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교복 조끼를 벗어 돌리던 친구야, 그리고 그 조끼 단추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웃던 친구야, 함께 교실이데아를 부르며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를 외치며 함성을 지르던 그때 그 친구들아,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지내니. 모두와 노래방에 다시 가고 싶구나, 보고 싶은 친구들아.

허소아/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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