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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잡아먹었다가는 큰일 김치나 양고기와 바꿔먹을까. 한겨레 21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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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남극 세종기지 김종훈 요리사가 전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주방 이야기
열 받는 일이 이어진다.
소비자 물가는 오르고, 국방부 덕분에 기자가 선물한 현기영 소설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읽던 친척 동생은 졸지에 ‘불온분자’가 됐으며, 열대야는 멈출 줄 모른다. 몸과 마음이 더우면 입맛도 사라진다. 사라진 입맛을 돌아오게 할 음식을 찾아 〈esc〉가 ‘지구상에서 가장 시원한 곳’까지 더듬었다. 남극 세종기지에서 근무하는 김종훈(37) 요리사와 전자우편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주방’의 뒷얘기를 들어봤다.
김씨는 1993년 레스토랑에서 처음 요리를 배우며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 뒤 여러 호텔·뷔페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전공은 양식이지만, 한식·중식 조리사 자격증도 땄다. 김씨는 지난해 남극기지 요리사 공모에 뽑혀 자신을 포함한 선발대 5명과 함께 지난해 12월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첫발을 디뎠다. 달포 인수인계 과정을 거친 뒤 그는 본격적으로 남극의 주방을 책임졌다. 세종기지 요리사의 근무 기간은 1년이며 한번 다녀온 뒤 다시 지원할 수 있다. 남극에 푹 빠져 세종기지에서 세차례 근무한 요리사도 있었다.
17명의 상주대원을 책임지는 김씨의 삶은 극적이었다. 더위에 허덕이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김씨가 알려준 초계탕 조리법은 또다른 선물.
식재료 500kg 파도에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
고 : 남극기지 근무를 지원한 동기는 무엇인지요?
김 : 세종기지 주방장이란 경험은 보통의 주방장들이 경험하기 힘듭니다. 극지에 대한 호기심이 큰 동기였습니다. 또 남편이자 백일 지난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서 신청했습니다!
고 : 남극기지에 요리사는 몇 명인가요?
김 : 통상 17명의 대원이 상주하므로 요리사는 1명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연구인원 등으로 기지 인원이 급증하는 여름(12월~2월)에는 칠레인 주방보조 1명이 저를 돕습니다. 올해는 기지 증축사업으로 평년보다 네 배 많은 약 90여 명이 5월 중순까지 상주할 예정이라 주방보조를 2명으로 늘렸습니다. 한 달 단위로 메뉴를 작성하며, 매주 한번 양식·중식·한식·일식 등의 ‘이벤트 메뉴’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남극의 음식재료는 주로 칠레 군 비행기를 통해 보급되는지라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겨울에는 야채 및 과일 등의 음식재료가 보급되지 않아 식단 짜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동계기간에는 주로 냉동 육류·생선·통조림·야채 등을 이용해 식단을 정합니다.
김씨에게도 ‘휴일’은 있다. 주말 아침에는 대원들이 자발적으로 특별요리를 준비해서 같이 나누어 먹는다. 남극기지 대원들은 이를 ‘대원요리’라고 부른다. 목요일 식단을 엿봤다. 아침식사는 쌀밥에 김치볶음, 콩자반 햄구이 파래 볶음, 콩나물 김칫국이다. 점심식사는 해물 볶음밥에 짬뽕국, 저녁은 완두콩밥에 치킨, 육회, 스크램블 버터볶음, 된장국이었다.
고 : 극단적으로 낮은 기온, 제한된 식재료 등 요리사에게는 고된 작업환경이라 생각됩니다.
김 : 식재료의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다음 보급 시기를 기약할 수 없으므로 한꺼번에 식재료를 보급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달걀과 야채, 과일을 포함해 500kg 상당의 음식재료를 받으려고 기지 내 운영 가능한 모든 조디악(운송용 고무보트) 석 대를 수송기가 기다리는 인근 칠레기지로 보냈습니다. 한 번의 운송으로 모든 식자재를 이송하여야 했는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돼 버렸습니다.
강한 바람과 파도, 그리고 무거운 식자재로 조디악에 파도가 들이쳐 내부가 물바다를 이뤘습니다. 야채와 달걀이 둥둥 떠내려 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 유용할 음식자재가 떠내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대원들은 조디악에 가득 찬 바닷물을 손과 고글로 열심히 퍼 결국 무사히 기지로 식자재를 운송했습니다. 이날 저녁 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사수한 귀중한 달걀과 야채로 눈물의 파티를 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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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요리사가 일하는 모습. 좁고 낮은 주방에서 대원들을 기쁘게 할 요리가 탄생한다. 극지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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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갈매기도 포획 금지… 유빙으로 팥빙수
제가 아팠던 일도 생각납니다. 기지 내 보수 공사로 수용인원이 많아진 상황에서 오래된 주방 기자재를 들고 낮은 싱크대에서 장시간 근무하다 보니 차츰 허리에 무리가 갔습니다. 결국, 무거운 식자재를 나르다 허리를 다쳐 일주일을 숙소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재활운동을 해야 했죠.
매일 새벽 식사 준비시간이 되면 자연히 눈이 떠졌지만 몸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세종 기지에서 제구실을 하지 못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고맙게도 대원들이 자발적으로 조를 짜서 식사준비를 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꼼짝 못하는 주방장을 위해 숙소까지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줬죠. 그때 대원들의 끈끈한 동료애를 느꼈습니다.
고 : 식재료 보급은 몇 주 혹은 몇 달 단위로 받는지요?
김 : 야채 및 과일 등의 채소류 보존기간을 고려할 때, 약 3개월에 한 번씩 보급을 받아야 하나, 실제로 날씨가 악화하는 5월에서 10월까지는 식재료를 보급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보급받는 식재료는 전량 칠레산 양파·당근·감자·호박·가지·양배추·양상추·무·배추 등이 있으며, 과일은 사과·오렌지·망고·체리·키위·포도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채의 경우 국산 것과 비교하여 현저히 질이 떨어지고 운반과정에서 손상이 심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 : 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거나 향수병에 걸렸을 때 ‘비장의 무기’로 활용하는 음식이 있는지요?
김 : 시골밥상, 식혜, 간장게장, 건 나물 비빔밥 등을 제공합니다. 특히 얼마 전에는 야채가 부족한 겨울철 입맛이 떨어진 대원들을 위해 랍스타 요리를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장난이 아니더군요.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고 : 남극 현지에서 채집해서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있는지요?
김 : 남극에서는 현지의 생물을 채집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배 또한 철저히 규제됩니다. 또 날씨가 추워 먹지 못하는 이끼류의 식물밖에 없습니다. 다만, 유빙으로 팥빙수 정도는 만들어 먹습니다.
고 : 남극 현지의 동식물을 채집하거나 먹을 수 있나요?
김 : 남극에서는 “남극활동 및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구 목적 외 동식물을 함부로 채집하지 않고 있습니다. 채집, 식용이 금지된 동식물에는 펭귄·물개·남극 대구·남극 갈매기 등 남극에서 서식하는 모든 동식물이 포함됩니다. 이를 이겼을 경우 처벌로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종기지에서 이러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외국기지 대원들에겐 김밥·김치보쌈이 인기
고 : 현재 남극의 기온은 몇 도 정도인지요?
김 : 세종과학기지는 해안 가까이 있어 남극대륙만큼 춥지는 않고 영하 15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러우신가요?
고 : 남극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조리할 수 없는 음식이 있는지요?
김 : 특별히 지역적 특성으로 조리할 수 없는 음식은 없습니다. 다만,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보신탕요리는 자체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고 : 다른 나라 연구기지와 음식재료를 교환하는 일이 있나요?
김 : 물론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8개국 기지가 함께 상주하기 때문에 다양한 식재료가 존재합니다. 우리의 경우 김치·소주·사발면 등이 인기가 좋아 아르헨티나 기지의 양고기와 교환하거나 중국기지의 향신료와 교환하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대원들은 ‘아사도’라 불리는 통 양고기 구이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외국기지 대원들에게는 김밥, 주꾸미 무침, 김치 보쌈 등이 인기가 좋습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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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을 달래주는 초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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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의 남극 레시피
향수병을 달래주는 초계탕
김종훈 요리사는 제철 음식을 그리워하는 대원들에게 틈틈이 여름 음식을 만들어준다. 김씨가 이 가운데 대원들이 특히 좋아했던 초계탕 조리법을 〈esc〉독자들에게 알려 왔다. (1인분 기준)
◎ 주재료 : 닭 300g, 소고기 50g, 말린 해삼 20g, 오이 50g, 표고버섯 30g, 죽순 30g.
◎ 국물 양념 재료 : 깨소금 1스푼, 국 간장 1스푼, 식초 1스푼, 겨자 1/2스푼, 설탕 1/2스푼, 후추 약간.
◎ 고기 양념 재료 : 참기름 약간, 다진 파 조금, 다진 마늘 1/2스푼, 설탕 1/2스푼, 간장 1스푼, 후추 약간, 실고추 및 잣을 고명으로 사용.
◎ 조리법
① 닭고기를 깨끗이 씻어 냄비에 월계수 잎과 통후추를 조금 넣고 물을 부어 삶는다.
② 쇠고기는 채로 썰어서 고기 양념에 무치고 국물 양념을 식힌 육수에 넣는다.
③ 표고버섯은 불려서 가는 채로 썰어 쇠고기 양념과 함께 볶아 식힌다.
④ 오이는 반달 썰기를 하고 소금에 절인 후 볶는다.
⑤ 말린 해삼은 반으로 갈라 내장을 말끔히 씻고 죽순과 함께 참기름과 소금을 넣어 볶아 식힌다.
⑥ 그릇에 오이·닭고기·해삼과 고기를 얹고 육수를 부은 다음에 고명으로 실고추와 잣을 뿌린다.
⑦ 바다에서 건진 깨끗한 유빙(한국에 있는 독자들은 얼음으로)을 잘게 쪼개어 그 중 서너 개를 육수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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