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3 23:22
수정 : 2008.08.1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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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시절, 새벽 산에서 겪었던 ‘컵라면 소등’을 잊을 수 없다. 사진 권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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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내게 라면에 대한 추억은 맛있는 라면이라기보단 그렇지 않은 라면의 얘기다. 하지만, 짜디짰던 그 라면 국물이야말로 고등학교 시절 내 추억의 정수였다고나 할까.
2007년 12월31일 저녁,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와 친구들이 함께 모였다. ‘이제 내년이면 고3이다. 앞으론 자주 못 만날 거야’라는 생각으로 만난 우리 4총사는 어떻게 하면 새해 첫날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고교 시절 우리들의 모임을 최대한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심야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서니 2008년의 첫 새벽이었다. 3시. 하지만, 어째서인지, 모두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그때 즉석에서 결정한 안은 바로 ‘동네 산에 올라 일출을 보자’는 것이었다. 모두 흔쾌히 동의했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각자 준비를 하고 4시30분에 다시 만나기로 한 후 헤어졌다.
4시30분. 다시 만난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완전무장 상태였다. 두터운 패딩과 털모자 사이로 눈만 반짝였다. 산에 오르기에 앞서 우리는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샀다.
1월1일 새벽 5시의 산, 예상보다 훨씬 춥고 어두웠다. 다행히 달빛이 발밑을 흐릿하게나마 비추었다. 동네 산이지만 꽤 경사가 급했고 하루 종일 노느라 몸은 지쳐 피곤했다. 그렇게 30분쯤을 올랐을까, 정상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머리 위엔 북두칠성만이 빛났다. 정상에서 보는 새벽녘의 야경에 잠시 혹하기도 했지만, 금세 우리는 깨닫고야 말았다. 일출이 몇 신지도 모르고 무식하게, 무작정 올라오기만 했다는 것을!
일출까진 아직 2시간이나 남았는데 산의 정상은 너무나 추웠다. 산에 막 올랐을 때의 체온은 이미 식고 오한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단 가져온 라면을 먹으며 몸을 녹이기로 하고 모두 컵라면에 스프를 뿌리고 보온병을 열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 . 그리고 내 차례 …. 그런데 물이 조금 나오다 만다. 면발 위에 뿌려진 스프만 축축히 적시는 정도다. 나 혼자만 라면을 못 먹게 되어 추위에 짜증이 슬슬 더하기 시작하는데 친구가 대책을 강구해냈다. 자기들이 얼른 면만 건져 먹고 그 국물로 내 라면을 익히는 것. 음, 꽤 그럴듯해 보였다.
녀석은 서둘러 면만 건져 먹고 거의 김도 나지 않는 국물을 내 용기에 부었다. 나는 얼른 뚜껑을 덮고 손으로 컵을 감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더 잘 익기라도 할 듯이. 하지만, 그것은 기대일 뿐이었다. 이미 차가워진 국물 속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들어 올리니 겉쪽만 살짝 불은 둥그런 면발이 그대로 들려 올라왔다. 게다가 미처 생각지 못한 국물은 또 어찌나 짠지 …. 이미 스프를 넣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라면 국물을 부어 스프 농도가 몇 배가 된 것이다. 어쨌든 버리지는 못하고 난 그 음식 아닌 음식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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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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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을 먹으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지만 시간은 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해 뜨기 30분 전, 포기하고 하산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동쪽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볼 수 있었는데 ….’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기껏 산에 올라가 일출도 못 보고 아무것도 건진 게 없는 것 같지만 엉터리로 끓인 컵라면을, 굳어진 표정으로 우걱우걱 씹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추억은 없을 것이기에, 그때 그 맛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뭐, 물론 ‘식객’에서처럼 어른이 되어서 다시 그 맛을 찾아다닐 건 아니지만.
권한결/ 강원 춘천시 석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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