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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0 17:34 수정 : 2008.08.20 17:34

〈코스믹 반디토스〉

[매거진 esc] 이다혜의 한 줄로 한 권 읽기

〈코스믹 반디토스〉
A. C. 바이스베커 지음 박인순 옮김 작은이야기 펴냄

“우리가 현실을 만들어 내지만, 현실도 우리를 만들어 낸단 이야기요.”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모든 게 운명 같기도 하고 우연 같기도 하다. <코스믹 반디토스>를 쓴 A. C. 바이스베커의 삶도 그랬다. 출판사가 저자에게 떨이로 넘긴 책이 저자가 세상을 방랑하는 새 컬트적으로 소수의 추앙을 받으며 권당 300달러짜리 희귀본으로 둔갑하고, 바이스베커가 토머스 핀천이라는 소문이 나돌더니 15년만에 재출간되고 존 쿠삭이 영화화를 결정하게 되었다. 세상을 등지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다 불사르고 떠난 남자에게 벌어지는 일 치고는 너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성공이다.

또한 시작과 전혀 다른 결말이다. 진짜 신기한 건 지금부터인데, 이 책의 이상한 운명은 이 책의 내용과도 닮아있다. <코스믹 반디토스>는 도난당한 미국인 가족의 짐가방을 뒤지다가 양자물리학에 빠져들게 된 어느 마약밀매범 이야기다. 할 일이 없어 뒤적거린 책이 하필 물리학 책인데, 양자역학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말을 듣다 보니 호기심이 자란다. 더 많은 관련 서적을 읽으려고 했으나 출신이 출신인지라 도서관을 노략질하고 도서관장을 납치한다. 그래도 안 되겠어서 이번엔…, 하는 식으로 점점 눈덩이가 커진다. 아놔, 우주와 인생의 본질이라니.

술과 마약과 여자만 있으면 지구가 멸망해도 코웃음칠 같던 삶의 주인공 체면이 말이 아니다만 우연이 촉발한 이 좌충우돌은 끝장을 볼 때까지 내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기가 만들어낸 현실 속으로 풍덩 빠지고 그 현실은 주인공을 바꾼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아닌가. 바이스베커는 <코스믹 반디토스>를 만들어냈고 <코스믹 반디토스>는 바이스베커를 만들어냈다. 이 기묘한 순환구조는 결코 같은 길을 반복해 돌지 않으며 결코 멈추지도 않으며, 우연이 운명이 되고….

한편으로는, 주인공 ‘나’의 양자역학에 대한 ‘썰’을 듣고 있자면 주정뱅이들의 횡설수설과 양자역학이 이렇게 비슷한 것이었나 놀라게 된다. “바나나는 개연적으로만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나’의 친구들은 분명,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아인슈타인이니 슈뢰딩거가 멕시코 마약 밀매상이 아니었길 얼마나 다행인가.

이다혜 좌충우돌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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