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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0 19:20 수정 : 2008.08.24 14:09

펄펄 끓는 기름구덩이에 놈이 폭탄을 투척했다아~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어리버리 견습생의 실수에 지구가 흔들릴 듯한 굉음
주방에선 날마다 거칠고 어이없는 해프닝이 수십번씩

주방은 늘 사고가 일어난다. 종종 남녀간의 연애‘사고’도 일어나지만, 그렇게 로맨틱한 사고보다는 거칠고 어이없는 해프닝이 더 많다. 주방은 늘 훈련된 요리사들만 일하는 곳은 아니다. 견습부터 막 초짜 딱지를 뗀 촌뜨기까지 득실거린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사고가 벌어진다.

튀김들의 다이빙, 화상에 노출된 팔뚝

주방장 쥬세페가 근엄한 목소리로 부주방장 뻬뻬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늘 정어리 튀김 12인 분을 준비하라구. 저녁에 예약이 있어.” 기름 솥에 가스 불을 붙이니 자글자글 기름이 올라온다. 기름이 가열되는 순서가 있다. 100도가 넘으면 기름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속까지 갈라지면서 기름의 밀도가 꽉 차는 듯한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튀기기 딱 좋은 180도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온도가 올라가면 연기가 치솟고 매캐한 연기가 주방에 가득 찬다. 이런 기름 연기가 요리사들의 폐를 공격한다. 담배 한 대도 피워보지 않은 요리사들조차 폐암 위험이 높은 건 우연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튀김은 꽤 재미있는 요리이지만, 별로 근사하지 않은 오일 마사지를 공짜로 제공하곤 한다. 좀 튀겼다 하면 머리털이 엉켜서 샴푸 거품이 일지 않을 정도로 뻑뻑하게 만들고-내 폐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얼굴은 땀인지 기름인지 내추럴 복합성분의 에센스를 바른 듯 미끈거린다. 게다가 튀김들이 다이빙을 하면서 튕겨내는 포말은 팔뚝에 화상을 입힌다.

튀김 솥은 늘 조심스럽게 다루라고 선배 요리사들의 엄포가 떨어진다. 특히 일전에도 말했듯이, 펄펄 끓는 기름 솥을 너무 두려워하면 사고가 생긴다. 튀김재료를 바짝 가까이서 넣지 않고 끓는 기름이 두렵다고 멀찍이 떨어뜨리면 오히려 기름이 튀어 살갗을 벗겨 버린다. 이런 사고는 저 혼자 다치면 그만이다. 그런데….

쾅!!! 콰콰콰쾅!!! 연달아 폭발음이 들렸다. 폭탄이 떨어진 게 틀림없어. 아니면 지진일까? 나는 얼른 오븐 밑으로 숨어들었다. 고개를 들어 내다보니 다른 동료들도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지진이 난 줄 알았을 것이다. 이곳 시칠리아는 환태평양지구대, 그러니까 지진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주방장 쥬세페만 어이가 없는 듯 한손을 허리에 얹고 한손으로는 삿대질을 해가며 부주방장을 욕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시칠리아 사투리,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가 뒤섞인 듯한, 저 에트나 화산에 사는 염소가 웅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한.

기름비가 쏟아져서 바닥은 온통 미끈거렸다. 나는 재빨리 신문지로 바닥을 닦았다. 부주방장 뻬뻬를 반장으로 한 사고수습반이 즉석에서 꾸려졌다. 사고 원인은 뻔했다. 누군가 기름 솥에 와인 병을 쏟거나, 물을 들이부었거나, 하다못해 마시던 주스 병이 떨어졌을 게다.

어느 패스트푸드점의 아르바이트생이 콜라병을 감자튀김 솥에 빠뜨렸을 때도 이런 소리가 났을 것이다. 기름에 수분이 닿으면 큰 소리가 난다. 궁금하시면 지금 당장 팬에 기름을 두르고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려 보시라. ‘치이~’하는 튀김소리는 사실 튀김재료의 수분과 기름이 만나서 내는 소리일 뿐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주장하는 ‘맛있는 소리’의 실체….

뻬뻬가 막내 수습요리사를 세워놓고 눈을 부라리며 어르고 있었다. 으흠, 저 녀석이 사고를 쳤군. 알고 보니 녀석이 옮기던 얼음이 한 바가지 기름 솥에 떨어졌다. 그러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치솟아 산성비, 아니 기름비가 쏟아진 거다.


시칠리아의 한 식당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사진 박찬일.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던 10인분의 스파게티

이탈리아의 고급 식당 주방엔 늘 수습요리사들이 득실거린다. 짧게는 며칠에서 몇 달 단위의 실습생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마련인데 이 녀석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외모부터 별났다. 재킷은 너무 커서 마치 침대보를 뒤집어쓴 것 같았고, 바지는 남의 것을 빌려 입은 듯 깡총하게 짧았다. 그가 움직이면 죽마를 탄 서커스 단원처럼 불안했다. 걸음걸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늘 주방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고를 쳤다.

며칠간 잠잠하다 싶으면 후속작이 연속 출시된다. 손님이 밀어닥쳐서 너무 바빠 땀으로 소금 간을 하는 날이었다. 키가 2미터는 될 듯하고 비쩍 말라서 바삐 걸어가면 높이뛰기용 장대가 도약대 앞 최후의 순간에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골뜨기 수습요리사 녀석이 연속극을 썼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주방 바닥에 온통 미꾸라지를 풀어놓은 듯 꿈틀거리는-내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것들이 가득 차 버렸다. 발을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뿌연 수증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안경을 벗어 닦았다. 맙소사. 10인분은 족히 될 만한 스파게티가, 그 노란색의 지렁이 같은 파스타 가락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죽마’가 삶은 파스타를 바삐 프라이팬으로 옮기다가 대형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그는 그날 이후 주방에서 볼 수 없었다. 너풀거리는 이불자락 같은 초대형 요리사 재킷은 어디에서 구했을까, 그가 다시 요리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고를 꼭 사람만 치는 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다니는 쥐도 주방의 시골 식당 주인이다. 적당히 생선내장이나 달걀 따위를 훔쳐 먹으며 조신하게 지낸다면, 주방 사람들은 쥐잡기 놀이 같은 데 나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너무도 피곤하고 아파서 겨울 에트나 산의 토끼몰이도 사양할 판이니까 말이다. 무리하게 프라이팬을 들어올리다 보면 왼쪽 손목은 거의 피로골절 상태가 되고, 인대가 늘어난다. 늘 서 있는 일이다보니 지렁이처럼 혈관이 드러나는 정맥류나 무릎 관절염. 허리 디스크가 흔하다. 항상 눈 아래 불판을 고개를 꺾어 내려다보아야 하니 목 디스크도 걸린다.

각설하고, 생쥐 한 마리 때문에 가게가 온통 뒤집어졌다. “꺄악~” 스위스 관광객 가족이 식사하던 원탁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방 식구들의 홀대를 참다못한 생쥐가 손님상에 등장하고 만 것이다. 웨이터들이 총출동하여 원탁 옆의 벽으로 생쥐를 몰았다. 구경거리가 생겨 살판이 난 부주방장 뻬뻬와 디저트 담당 잔니도 “토폴리노!(생쥐)~”하면서 눈을 생쥐처럼 뜨고 달려 나갔다. 나도 넝마 같은 앞치마를 벗고 은근슬쩍 홀로 나갔다. 과연, 저 구석 사지에 몰린 생쥐가 반들반들한 눈을 뜨고 측은하게 바르르 떨고 있었다. 주방장 쥬세페가 오븐을 청소하는 쇠자루로 재빨리 녀석을 내려쳤다. 꺄악, 다시 비명이 터졌고, 생쥐의 머리가 박살나는가, 했지만 녀석은 필사의 줄행랑을 놓았다. 기다란 꼬리를 흔들며 둔해빠진 잔니의 다리 사이로 유유히 탈출해 버린 거였다.

손님상 점령한 생쥐, 마른오징어에 잡히다

다음 날, 쥬세페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쥐덫을 사왔다. 맛있는 치즈 한 토막을 넣고 으슥한 주방 복도에 놓았다. 생쥐는 걸리기만 하면 부위별로 해체될 터였다. 그러나 녀석은 잡히지 않았다. 약 올리듯 쥐똥을 서너 톨씩 주방 바닥에 질러놓거나, 직원들 락커에 숨어들어 찍찍, 소리를 내기도 했다. 쥐덫에는 마른오징어를 넣어 쥐를 유혹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칠리아 쥐라고 오징어를 싫어할 리 없었다. 나는 오징어를 말려 쥐덫에 끼웠다. 마른오징어에서 풍기는 강력한 냄새에 다들 코를 싸쥐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틀이 지나자 영어의 몸이 된 생쥐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찬일 이탈리아 레스토랑 ‘논나’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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