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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기름구덩이에 놈이 폭탄을 투척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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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어리버리 견습생의 실수에 지구가 흔들릴 듯한 굉음주방에선 날마다 거칠고 어이없는 해프닝이 수십번씩 주방은 늘 사고가 일어난다. 종종 남녀간의 연애‘사고’도 일어나지만, 그렇게 로맨틱한 사고보다는 거칠고 어이없는 해프닝이 더 많다. 주방은 늘 훈련된 요리사들만 일하는 곳은 아니다. 견습부터 막 초짜 딱지를 뗀 촌뜨기까지 득실거린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사고가 벌어진다. 튀김들의 다이빙, 화상에 노출된 팔뚝 주방장 쥬세페가 근엄한 목소리로 부주방장 뻬뻬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늘 정어리 튀김 12인 분을 준비하라구. 저녁에 예약이 있어.” 기름 솥에 가스 불을 붙이니 자글자글 기름이 올라온다. 기름이 가열되는 순서가 있다. 100도가 넘으면 기름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속까지 갈라지면서 기름의 밀도가 꽉 차는 듯한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튀기기 딱 좋은 180도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온도가 올라가면 연기가 치솟고 매캐한 연기가 주방에 가득 찬다. 이런 기름 연기가 요리사들의 폐를 공격한다. 담배 한 대도 피워보지 않은 요리사들조차 폐암 위험이 높은 건 우연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튀김은 꽤 재미있는 요리이지만, 별로 근사하지 않은 오일 마사지를 공짜로 제공하곤 한다. 좀 튀겼다 하면 머리털이 엉켜서 샴푸 거품이 일지 않을 정도로 뻑뻑하게 만들고-내 폐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얼굴은 땀인지 기름인지 내추럴 복합성분의 에센스를 바른 듯 미끈거린다. 게다가 튀김들이 다이빙을 하면서 튕겨내는 포말은 팔뚝에 화상을 입힌다. 튀김 솥은 늘 조심스럽게 다루라고 선배 요리사들의 엄포가 떨어진다. 특히 일전에도 말했듯이, 펄펄 끓는 기름 솥을 너무 두려워하면 사고가 생긴다. 튀김재료를 바짝 가까이서 넣지 않고 끓는 기름이 두렵다고 멀찍이 떨어뜨리면 오히려 기름이 튀어 살갗을 벗겨 버린다. 이런 사고는 저 혼자 다치면 그만이다. 그런데…. 쾅!!! 콰콰콰쾅!!! 연달아 폭발음이 들렸다. 폭탄이 떨어진 게 틀림없어. 아니면 지진일까? 나는 얼른 오븐 밑으로 숨어들었다. 고개를 들어 내다보니 다른 동료들도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지진이 난 줄 알았을 것이다. 이곳 시칠리아는 환태평양지구대, 그러니까 지진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주방장 쥬세페만 어이가 없는 듯 한손을 허리에 얹고 한손으로는 삿대질을 해가며 부주방장을 욕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시칠리아 사투리,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가 뒤섞인 듯한, 저 에트나 화산에 사는 염소가 웅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한. 기름비가 쏟아져서 바닥은 온통 미끈거렸다. 나는 재빨리 신문지로 바닥을 닦았다. 부주방장 뻬뻬를 반장으로 한 사고수습반이 즉석에서 꾸려졌다. 사고 원인은 뻔했다. 누군가 기름 솥에 와인 병을 쏟거나, 물을 들이부었거나, 하다못해 마시던 주스 병이 떨어졌을 게다. 어느 패스트푸드점의 아르바이트생이 콜라병을 감자튀김 솥에 빠뜨렸을 때도 이런 소리가 났을 것이다. 기름에 수분이 닿으면 큰 소리가 난다. 궁금하시면 지금 당장 팬에 기름을 두르고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려 보시라. ‘치이~’하는 튀김소리는 사실 튀김재료의 수분과 기름이 만나서 내는 소리일 뿐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주장하는 ‘맛있는 소리’의 실체…. 뻬뻬가 막내 수습요리사를 세워놓고 눈을 부라리며 어르고 있었다. 으흠, 저 녀석이 사고를 쳤군. 알고 보니 녀석이 옮기던 얼음이 한 바가지 기름 솥에 떨어졌다. 그러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치솟아 산성비, 아니 기름비가 쏟아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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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한 식당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사진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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