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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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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늙은 이들의 고루한 설교라고 생각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낼모레 마흔이 다가오니 은근히 신경 쓰인다. 나이를 잘 먹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 천양지차라는 걸 숱하게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넘치는 욕심을 숨기지 못해 말 그대로 ‘돼지화’되어가는 얼굴도 있고, 아무리 배운 게 많아도 야박한 인심 때문에 드라큘라로 변하는 얼굴도 있다. 품위 있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지덕체 고루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 가운데서 필수요소를 하나 꼽는다면 유머감각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정치인이나 예술가가 재치 있는 농담 한마디를 섞어서 대답할 때면 그냥 웃기다를 뛰어넘어 세련되고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만 나이와 격에 맞는 유머감각을 훈련하지 못해 “마사지걸을 고를 때에는 못생긴 여자를 골라야 한다” “(광우병)걱정되면 안 먹으면 되지” 따위의 지나치게 트렌디한 독한 유머나, “만나기는 했지만 듣기만 했다”는 둥 어색한 4차원 유머를 구사하는 바람에 ‘왜 저래?’라는 부작용에 가까운 반응을 얻는 이들이 있어 아쉽지만 말이다. 이처럼 웃기려고 애쓰는데 도무지 감각이 따라주지 않는 중장년층을 위해 <다크 나이트>를 권한다. 최고, 걸작 등의 단어와 더불어 성찰, 철학 등의 중후장대한 수식어로만 점철된 이 영화에 웬 봉창 두드리는 유머감각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숨막히는 2시간 반의 롤러코스터에서 유일하게 휴식을 주는 인물인 알프레드를 잊었다면 <다크 나이트>를 온전히 감상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이 연사 외치는 바이다. 알프레드는 흑기사건 백기사건, 절대악이건 아슬아슬한 외줄에 올라 있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농담을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알프레드가 속 편하냐? 주인 같고 아들 같은 배트맨 또는 웨인이 고생해, 욕먹어, 가면까지 벗겨질 이 찰나에 그의 속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웨인에게 선을 넘어갔다고 냉정하게 조언을 하면서도 “(가짜 배트맨들과) 함께 주말여행이라도 다녀오지 그래요?” 하고 농담한다. 그래서 시리즈의 어떤 작품에서보다 코너에 몰린 웨인이지만 알프레드 앞에서만은 “(배트맨의 정체를 밝히러 가서) 당신이 다 시킨 거라고 할래요.” 너스레를 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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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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