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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7 17:22 수정 : 2008.08.27 17:22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여유. 물밀듯 쏟아지는 외로움으로 금세 대치된다.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중학교 때 바느질 숙제를 엄마에게 부탁한 것만 빼고, 열세 살 이후로 나는 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막연하게 세계 1등이라고 생각한 그 독립심이란 걸 드디어 발휘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평소 여행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모두 떠날 만한 형편이 안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알다시피 먹고 자고를 며칠이나 같이 해야 하는 여행 친구 고르는 건 배우자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까다로운 일이 아닌가.

미술관을 30분 만에 대충 돌고 나올 것 같은 친구는 안 돼, 쇼핑이라면 속옷이 너덜너덜해졌을 때나 사는 친구도 안 돼, 호텔에 머리카락 좀 있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친구도 안돼 …. 고서점가도 가지만 동시에 동물원도 갈 수 있는 사람, 여건이 안 된다면 한 끼를 2천원에도 때울 수 있는 사람 등등.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윤기가 흐르는 여자,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를 찾는 것도 아닌데 괜찮은 친구는 많아도 이 조건에 맞는 마땅한 여행 친구는 유난히 눈에 안 띄었다. 그럴 바엔 혼자 가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게 낫지. 결국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엔 모르는 사람이 탔다.

아침마다 늑장 부리는 친구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결정할 때마다 ‘그건 싫은데’ 하고 훼방 놓는 사람이 없어 스트레스도 없었다.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쇼핑해도 됐고, 하루종일 공원에 늘어져 있어도 빨리 명소를 보러 가자는 사람이 없어 좋았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모든 장소와 음식과 루트에 대한 선택권은 오로지 나에게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선택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 그런 옷 있잖아”와 “그거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디자인인 거 알지?”라고 악마와 천사 노릇을 동시에 해 주는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쇼핑에 대한 욕구마저 생기지 않았다. 그냥 외로웠다. 외로워 죽겠다뿐이었다.

카페에 혼자 앉아서 책을 읽는 여유 같은 것은 ‘유러피언들’에게나 주라지. 여유는 지루함의 긍정적인 이름이었고, 자유로움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외로움으로 금방 대치됐다. 방금 지나간 잘생긴 남자와 ‘우웩’ 소리가 나오는 맛없는 음식과 우리가 왜 그 바보 같은 길로 들어섰는지에 대해, 계속 떠들 친구가 필요했다. 혼자 우동을 먹다가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추락했나 싶은 생각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통탄과 후회만이 가득했다. 혼자 간 ‘독립적인’ 여행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다가 결국 인적 드문 돗토리 사구에서 혼자 우박을 맞는 끔찍한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나지언의 싱글라이프
여행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진실이다. 작년 여름 두 달 넘게 친구와 여행하면서 나의 밑바닥을 목격했다. 나의 허영과 질투·게으름·편견·고집을 봤고, 나 자신이나 여행, 혹은 친구에 대해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뭔지를 깨닫게 됐다. 인생의 가장 끔찍한 점 중 하나는 여행은 계속되고 몰랐던 자신은 또 발견된다는 것이다. 고독했던 이번 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나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김치볶음밥이고 나발이고 일단 누가 있어야 한다는 것. 여행 친구를 찾는 게 배우자를 찾는 과정과 같으니, 인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화장실을 ‘더럽게’ 오래 쓰는 습관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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