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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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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송은이네 만화가게
들키지 않고 남을 해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것을 양영순의 <란의 공식>(전2권, 중앙북스 펴냄)에선 ‘설계’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화학실에서 약품이 든 병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것을 닦은 대걸레를 화장실 락스통에 담아둔다. 뭔가 잘못 먹어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간 학생은 락스와 화학약품이 반응해 발생한 유독가스에 질식한다. 떨어뜨린 놈, 대걸레로 닦은 놈, 걸레를 락스통에 담근 놈은 모두 다르다. 여러 사람의 경로가 겹치는 순간 설계자는 거기에 없다.란은 명문 사립고에 다니는 근로학생이다. ‘환경오염으로 개천에서 나던 용들은 모두 멸종’돼버린 시대에, 잘나가는 집안 자제들이 우글대는 학년 톱클래스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며 수업을 받는다. 란이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깨달은 것은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행동방식과 반복되는 일정한 동선’이 있다는 것. 이 동선이 겹치는 곳에 약간의 함정을 설치하면 완전범죄, 즉 설계가 가능하다. 란의 유일한 낙은 천사 같은 여학생 지니를 지켜보는 것이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한 지니에게 강제로 키스한 녀석을 혼내주기 위해 설계에 들어간 그는, 설계 대상자가 어이없이 죽어버리자 자신 말고도 설계자가 또 있음을 알게 된다. 지니를 지켜주기 위해 또 다른 설계자를 찾는 과정에서 학생 몇이 더 죽어나가고, 사건은 반전을 거듭하며 미궁으로 빠져든다.
적은 알아갈수록 강력하다. 강력한 미끼를 제공하며 똘마니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지시사항을 하달한다. 그가 설계를 짜고, 실행하는 건 간단하다. 사람들은 언제든 작은 이익을 위해 단편적인 지시사항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세상에 적용해 보면 많이 끔찍하다. 나의 의지와 행동이 누군가의 거대한 설계 속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 미끼가 아파트나 돈, 사회적 지위 같은 거라면. 결과적으로 돌아서서 웃는 것이 그라면.
김송은/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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