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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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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모델 앞에서 춤도 추며 촬영현장에 이야기를 불어넣어 온사진작가 강영호의 새로운 야심
“왜 저를 선택했어요? 전성기도 지났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성격 더럽다는 소문도 많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구요.(웃음) 저와 친한 걸 떠나서 왜 저와 대담을 하기로 했는지 궁금해요.”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여섯 번째 초대손님 사진작가 강영호는 대담 도중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김성일씨는 이렇게 대답했죠. “패션 쪽의 트렌드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나 유명하기만 한 사람들보다는 패션에 대해, 또 문화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 면에서 강영호 작가가 딱 맞다고 생각했죠.” <인터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파이란> <집으로> 등 영화포스터부터 광고까지 최고의 사진작가로 명성을 떨치다가 지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사진작가 강영호씨와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학을 전공했다는 점, 큰 시각에서 문화를 바라본다는 점, 또 대학원을 다니며 다시 공부를 한다는 점 등입니다. 외모마저 닮은 이 둘의 ‘말이 통하는’ 대담이 이제 시작됩니다.
정리 안인용 기자 inyong.an@gmail.com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강영호 저는 정확하게 패션계 사람은 아니에요. 그 언저리에 있죠. 패션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패션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성일씨는 그렇지 않아서 항상 좋았어요. 저는 불문학을 전공했고, 성일씨는 국문학을 전공했잖아요. 패션이나 사진이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쪽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인문학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공감대로 가진 유일한 사람이 성일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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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사진작가 강영호,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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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맞아요. 우리 둘은 외모도 비슷하지만(웃음) 그런 점에서 비슷한 부류예요. 순수예술이든 상업예술이든 예술 쪽에서 일하려면 보통 그쪽 기술을 익히면서 들어오는데, 우리는 그런 과정 없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래서 더 인문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를 표현하는 순수예술보다 대중과 만나는 상업예술 영역에서는 대중의 심리와 시선이 더 중요해요. 상업예술은 대중과의 소통이니까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소통의 범위가 더 광범위해져요.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도 있죠.
강 그런 공통점은 촬영을 하는 현장에서도 느끼곤 했어요. 문학은 이야기잖아요. 우리가 촬영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현장 자체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음악을 고르는 데서 손발이 맞았어요. 촬영을 할 때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내가 트는 음악에 대해 칭찬을 해 주거나, 맞장구를 치거나, 다른 음악을 제안해 주는 사람은 성일씨 딱 한 명이에요.
김 음악은 정말 너무 중요해요. 촬영할 때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 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음악으로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면 표정이 달라져요. 그런 표정을 담은 사진에는 힘이 있죠. 그런데 제가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작업을 하지만 음악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작가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자기만의 감정대로 음악을 통해 모델과 교감을 이뤄나가는 데서는 강 작가가 정말 탁월해요.
강 사실 촬영 현장에서 음악은 촬영 외적인 조건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는 것 말고 사진을 찍는 그 과정과 행위를 종합적으로 인정해 주는 게 문화인 것 같아요. 패션 사진이라고 옷만 잘 나오면 끝인 건 아니잖아요.
김 강 작가와 일을 할 때는 모든 게 갖춰진 패션 스타일링이 거추장스러워질 때가 있어요. 어딘가 비워야 해요. 스타일링이 생략돼야 강 작가가 생각하는 표정과 사진이 나와요. 그래서 강 작가와 촬영을 할 때는 스타일링을 최대한 억제해요. 액세서리든 옷이든 하나 더 붙여야 하는 걸 빼요. 그래야 사진에 이야기가 생겨요. 뭔가 침투할 구석이 생긴다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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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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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아, 그렇구나! 몰랐어요. 보통 사진작가들은 초점이 정확하게 맞고, 노출이 맞은 사진을 최종 선택하죠. 그런데 나는 초점이 잘 맞지 않고, 노출이 부족해도 감정이 올바르게 표현되고 나와 배우가 감정적으로 잘 맞은 사진을 오케이 컷으로 선택해요. 성일씨도 마찬가지네요. 스타일리스트 입장에서는 옷이 잘 나와야 되는 걸 텐데, 자기 스타일링을 줄이더라도 결과물 자체가 가는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거잖아요. 나도 가끔은 실력을 인정받으려면 조명을 제대로 치고, 초점을 잘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그런 건 달을 봐야 하는데 손끝을 보는 것과 같아요. 달을 같이 바라봐 주는 사람과 일을 하는 게 좋아요.
김 사람들은 단순히 스타일링에서 옷이 안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아무리 패션 브랜드라고 해도 옷은 부수적인 거고, 배우나 모델이 그 브랜드를 이미지로 표현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런 이미지를 잘 만들어내는 게 좋은 사진이죠.
강 인문학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기는 한데(웃음), 문학의 수사법 중에는 은유법이 있어요. 문학에서는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죠. 그런 수사법이 사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또 시적 허용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어, ‘시끄러운 옷’은 말이 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문학에서는 허용이 되죠. 그렇게 허용의 범위가 무한해야 상상력이 나와요.
김 상업예술도 예술인데, 우리도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줘야 해요. 1차원적인 직유가 아닌 은유를 사용하면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죠. 늘 궁금했던 게 있는데, 별명이 ‘춤추는 사진작가’잖아요. 촬영할 때 춤추고 소리 지르는 것 때문에 생긴 별명인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강 사진은 찰나예요. 과정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연출한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건 아니죠. 운칠기삼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사진을 찍는 방법 자체도 우연이라는 공간 속에 사람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우연에서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움직이고 춤추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사진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진 찍는 행위가 좋아서 사진을 시작한 사람이에요.
김 저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사진작가와 한 번이라도 작업을 해봤잖아요. 그런데 그 수많은 사진작가들 중에서 강영호라는 사람은 독특한 존재예요. 사진작가 목록에서도 별개로 있어요. 패션 사진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뷰티 사진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광고나 포스터 사진작가도 아니고. 그렇지만 다 찍을 수 있고. 제게는 자기만의 사진 세계가 있는, 별개의 사진작가로 구분되어 있어요.
강 저는 사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진은 도구지 목적이 아니니까요. 어딘가를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에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에요. 사진에 트렌드를 분석해서 담는 게 아니라 시대정신이나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생각을 담고 싶어요. 사진작가 그 이상의, 더 넓은 개념의 예술가를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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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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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도 마찬가지예요. 평생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문화간섭자적인 역할이에요. 패션은 다양한 문화가 녹아 있는 종합예술이에요. 패션을 통해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어요.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제 인생에 큰 획을 그은 직업인 것은 확실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부분에서 패션과 문화를 간섭하고 조정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요.
강 그래서 요즘에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노왓’(know-what), 그러니까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를 공부하고 있어요. 대학원 불문과를 다니는데, 거의 고3 때처럼 공부해요. 예전처럼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서이기도 하고.(웃음) 한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질적으로 떨어졌던 것은 인정해요. 일이 많으면 고민할 시간이 없어지니까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은데, 그게 오히려 단순히 패션이나 광고, 영화 포스터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 큰 틀에서 접근할 기회가 되고 있어요.
김 지금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건, 기술적인 면에서 도태가 되거나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잖아요. 성격 때문이니까.(웃음) 어떤 계기로든 다시 튀어나올 거예요. 아직 강영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중은 강 작가가 찍은 사진을 기억하고 있어요. 강영호만의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때요?
강 네. 지금 다른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조금 더 현대미술 쪽으로 들어가 보려고 해요. 물론 준비를 해야죠. 제가 들어간다고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3년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의 연장선에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을 찍는 작업도 하고 싶고, 제 철학을 담은 작업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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