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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보아도 좋고,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좋은 청령포. 일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 이런 곳으로 누가 나를 유배시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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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노동효의 아웃 오브 서울 1
88지방도로에서 만난 괴골 마을의 초현실적 풍경
<길 위의 칸타빌레>의 저자 노동효씨가 서울에서 제주까지 늦여름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가장 빠른 길인 하늘길을 이용하지 않고 강원도 산골과 동해안의 해안도로와 남해안의 섬을 둘러가는 길을 택합니다. 길을 끝낸 노씨가 보내올 여행기는 제주까지 이르는 ‘온 더 로드’의 기록입니다. 대한민국의 길들이 뿜어내는 향취에 취해 보세요. 편집자
미니홈피, 블로그 등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이래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싶다’라는 보조형용사다. 저도 읽고 싶네요, 저도 보고 싶네요, 저도 먹고 싶네요, 저도 가고 싶네요. 다종다양한 ‘싶다’들이 코멘트 난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린다. 그러나 수많은 ‘싶다’들의 차후 향방을 살펴보면 ‘실행’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서서히 혹은 곧 사멸해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중에 생존율이 가장 낮은 ‘싶다’는 ‘떠나고/가고 싶다’이다. 비록 그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는 아닐지라도 사멸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싶다’가 ‘실행’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가지 정치·경제·문화·사회적 배경이 존재하겠지만 - 실행 단계로 넘어서는 데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선사(禪師)가 남겨준 묘약 몇 방울을 드리겠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여덟 방울이면 충분하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是現今 更無時節) 바로 지금, 다시 시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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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떠내려왔는지 혹은 누가 두고 간 것인지 알 수 없는 뻐꾸기 시계 하나가 강 기슭에서 잠자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꿈속에서 떠내려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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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제주도에 이르는 가장 단순하고 빠른 길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리는 항로. 그러나 육지를 떠나기 전에 내륙의 길들이 뿜어내는 로드 페로몬(Road Pheromone)을 한껏 들이마신 뒤 부산항에서 제주도로 건너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렇게 하여 <아웃 오브 서울> (Out of Seoul)은 시작되었다. “이번주 수요일쯤 출발하는 게 어때?” 직장을 관두고 귀농 준비 중인 K도, 나 홀로 음반사를 운영 중인 L형도 흔쾌히 승낙을 했다. 세 사람의 동행. 서울을 떠나던 날은 구름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뭉개버릴 기세로 정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은 양복 차림의 스미스(영화 <매트릭스>에서 무한 복제된 스미스는 대도시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직장인들을 연상시킨다. 차이점은 영화 속의 스미스는 스스로 복제를 하지만 현실의 스미스는 시스템에 의해 복제된다는 것이다.)는 뭉게구름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바람을 따라 틀(形)을 변화시켜 가며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복사기 앞에 서 있거나, 계단으로 연결된 비상구 한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을 것이다. 푸른 하늘에서 일고 있는 뭉게구름 대신 그의 머릿속에선 새로 구입한 자동차 할부금과 아파트 융자금과 결제받을 서류들이 뒤엉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지도 모르겠다. “R, 여기서 88번 지방도로 빠지자.” 스미스의 세계에서 탈출해 귀농을 준비 중인 K가 보조석에서 소리쳤다. 원주를 지나 신림톨게이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가자 초록의 샛길이 펼쳐졌다. 88번 지방도는 강원도 영월의 황둔천을 끼고 굽이굽이를 틀며 서쪽으로 이어지다가 주천을 만난다. 술 주(酒) 자에 내 천(川). 오랜 옛날 술이 샘솟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양반이 마시면 청주가 되고, 천민이 마시면 탁주가 되었다지. 그러나 탁주면 또 어떠한가? 이태백은 독작(獨酌)이란 시에서 읊기를, 청주는 성인(聖人)에 비유되고, 탁주는 현인(賢人)과 같다고 했으니. 신분이야 천민이되 현인이면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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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형의 10시~11시 방향으로 거대한 공장 굴뚝이 보인다. 그 모습은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중국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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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산간의 승마목장. 동경(憧憬)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자들이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가 아닐까.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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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하나를 꿈꾸어 왔다,
두 개 또는 세 개의 바늘을 가진 시계를.
스스로 타고 있는 생담배와 같은 시계, 문방구 집 마누라의
바람기와 같은 시계, 모음조화와 같은 시계, 차가운 달과 같은 시계
언젠가는 나를 죽일 시계를 오래전에 읽은 하일지의 <내 꿈속의 시계>를 떠올리는 사이 강물은 흘러갔고, 햇살은 빗금의 각도를 기울이며 강물 위로 꽂히고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마을 어귀의 평상에 앉은 노인들을 만났다. 이 마을 이름이 왜 괴골이죠? 괴상할 괴(怪)자를 쓰는 것인가요? “아뇨, 느티나무 괴(槐)랍니다.” 글 <길 위의 칸타빌레> 저자 사진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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