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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인의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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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송은이네 만화가게
인간의 능력을 최고로 뽑아낼 수 있는 방법 중 효율적인 한 가지는 적당한 압박이다.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평소 능력의 몇 배를 보여주기도 한다. <심부인의 요리사>(후카미 린코 지음, 대원씨아이 펴냄)의 심부인과 요리사 이삼의 관계는 압박을 활용해 능력을 뽑아내는 방법을 착실히, 그것도 에로틱하게 보여준다. 유가의 안주인 심부인은 먹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대부호의 아내답게 젊고 아름답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사의 손가락을 잘라 개에게 먹였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심술궂다. 이삼은 유가에 요리사로 팔려왔다. 타고난 미각을 가진 뛰어난 요리사인 그는 심부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흉흉한 소문이 돌아도 그가 보기에 심부인은 ‘아름답고 고귀하며 관대한’ 여인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에 들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느닷없이 가을에 야자열매로 만든 요리를 먹고 싶다질 않나, 자신이 먹고 싶은 고기가 뭔지 알아맞혀 만들어 오라고 하질 않나… 어려운 숙제가 떨어지면 이삼은 고민을 거듭하고, 자신을 자책하기를 반복한 끝에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생떼를 쓸수록 맛있는 음식을 대령한다는 사실을 아는 심부인은 갖가지 꾀를 짜내 이삼을 괴롭힌다. 그런데 이삼을 진짜로 괴롭게 하는 것은 심부인의 심술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식사가 끝난 후 아무런 품평이 없으면 ‘아아, 내가 너무 저질이라 상대하지 않으시는 거야.’ ‘마님, 제발 저를 야단쳐 주세요’라며 절규한다. 마님에 대한 깨닫지 못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갖가지 재료를 사용해 굽고 찌고 삶고 튀기는 복잡한 요리를 척척 해다 바치는 이삼이 안쓰럽고, 이삼의 마음을 알면서도 괘념치 않고 놀려먹는 심부인도 귀엽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의 살짝 사도-마조히즘스러운 관계가 보여주는 에로틱한 분위기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김송은/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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