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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몰트 위스키 탄생의 현장, 스코틀랜드 시골마을의 맥켈란 증류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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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싱글 몰트 위스키 탄생의 현장, 스코틀랜드 시골마을의 맥켈란 증류소를 가다
1918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가스등 밑에 한 일본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스페이강 근처인 스페이사이드의 위스키 양조장으로 가야했다. 막 종전한 1차대전 때 영국과 일본은 협력 관계였지만, ‘도널드’를 ‘도나르도’라고 어눌하게 발음하는 일본인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줄 스코틀랜드인은 많지 않았다. 거의 혼자 힘으로 그는 롱먼 양조장에 도착했다.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그 뒤 2년 동안 롱먼과 켐벨타운의 위스키 양조장에서 도제식으로 양조 기술을 배웠다. 그는 일본의 1세대 위스키 회사인 고토부키야 직원으로 영국에 파견됐다. 히로시마의 청주 양조 가문 귀공자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종주국’의 위스키 기술을 배우는 도제에 불과했다. 매일 증류기 옆에서 땀을 흘리던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2년 뒤 양조 기술은 물론 스코틀랜드인 부인과 함께 일본행 배에 올랐다. 그의 손에서 1929년 일본 최초의 국산 위스키가 태어났다. 무엇이든 일본화하는 일본 근대 문명은 스카치위스키도 자신의 문화로 받아들였다. 이런 전통 탓인지 일본 위스키 시장은 선토리·니카 등 자국 브랜드 점유율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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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몰트 위스키 탄생의 현장, 스코틀랜드 시골마을의 맥켈란 증류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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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찾아간 스코틀랜드의 시골, 스페이사이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한 증류소에서만 만들어진 몰트 위스키) 맥켈란 증류소 터는 공원처럼 아름다웠다. 증류소 문을 열자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맥아(보리에 싹 틔운 것)를 갈아 물과 혼합한 뒤 효소를 넣어 녹말을 당분으로 분해한 용액을 ‘매시’(mash)라 부른다. 이 과정이 첫단계다. 효소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자 따뜻한 물을 섞는 탓에 매시 하우스 안은 후텁지근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매시는 발효탱크로 옮겨진다. 발효탱크에서 매시에 효모를 넣어 당분을 알코올로 바꾼다. 이렇게 만들어진 걸쭉한 용액을 ‘워트’(wort)라고 하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특별히 ‘워시’(wash)라고 부른다. 일종의 맥주인 셈인데 실제로 워트를 마셨다간 설사 때문에 곧장 화장실로 뛰어가야 한다고 닉 폴라치 피알매니저가 설명했다.
양파처럼 생긴 맥켈란 증류기는 사람 키의 3~4배 정도 높이였다. 사람 키의 십수 배에 달하는 증류기가 많아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작은 축에 든다. 증류 원액은 투명하며 알코올 도수는 평균 70%에 이른다. 보리로 만든 소주인 셈. 스카치 위스키 특유의 은은한 색깔은 참나무통에서 익으면서 생긴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맥켈란의 경우 스페인산 셰리주(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달콤한 와인)를 보관했던 통에서 숙성한다. 맥켈란 위스키 특유의 말린 과일 향과 부드러운 바닐라향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처음에 60%에 달했던 알코올 도수는 매년 조금씩 떨어져 10년쯤 지나면 58%까지 낮아진다. 시인 바이런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숙성기간 증발되는 알코올을 지극히 문학적으로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 이들의 문학적 재치는 “위스키가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해 주세요”(Quiet please-whiskey sleeping)라는 저장고 안 팻말에서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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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헤레스 지역 와인 양조장 모습. 이 통에서 셰리를 뺀 뒤 위스키 숙성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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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이 끝난 위스키는 한 오크통에서 꺼내 병입하거나 여러 오크통의 위스키를 혼합(배팅)해 향·맛·색을 맞추기도 한다. 통마다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위스키를 섞어 최상의 맛을 똑같이 유지하는 일은 보브 달가노(위 사진) 위스키 메이커의 몫이다. 위스키 메이커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해당한다. 향(nose) 맛(palate) 피니시(finish 위스키를 마시고 난 뒤 입안에 남는 풍미)를 조화시킨다. 오후 1시부터는 보브 달가노의 안내로 직접 배팅 작업을 배웠다.
증류소에서 나와 맥켈란 소유의 보리밭 등 영지를 돌았다. 강물은 이탄이 섞여 흑단처럼 까맸다. 햇빛이 비추는 언덕에 고적운 그림자가 흘러가는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인공의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는 다디단 공기는 제주도의 그것과 비슷했다. 정말 스코틀랜드의 하늘과 바람은 위스키에 스며드는 것일까? 적어도 사람에게는 스며드는 것 같다. 따뜻한 히로시마 태생의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이 곳의 바람과 흙을 잊지 못해서인지, 일본에 돌아온 뒤 고향을 떠나 스코틀랜드의 기후와 비슷한 홋카이도에 위스키 증류소를 만들고 거기서 평생 술을 빚었다.
※참고〓<아이위트니스 컴패니언스-위스키>(찰스 매클린·돌링 킨더슬리)
스페이사이드〓글·사진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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