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01 19:26
수정 : 2008.10.01 19:26
[매거진 esc] 김혁의 장난감공화국
장난감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들은 장난감이란 그저 가지고 노는 물건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장난감이 세상을 바꿔놓는 동기가 되고, 신기술의 출발점이 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레고(Lego)로 대표되는 블록 장난감은 원래 건축 도구였다. 중세 유럽의 건축가들은 교회나 성당을 짓기 시작할 때 돌이나 나무 조각들을 쌓아 올려 완성된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에 관해 토의했다고 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었던 셈.
이런 장난감의 변신은 현대에도 계속된다. 2007년 5월 일본의 대형 전자회사 엔이시(NEC)에서 발매한 로봇 ‘헬로키티 로보’. 약 60cm 크기의 이 로봇은 걸어 다니거나 일어서진 않지만 재미있는 기능을 많이 갖고 있다. 컴퓨터 두뇌를 가진 이 로봇은 눈에 장치된 카메라로 최대 10명까지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는데,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그 반응 또한 다르다. 예를 들어 형과 동생이 각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게 했다면, 형이 부를 때와 동생이 부를 때 ‘창식님 오셨습니까?’, ‘내 친구 창수 왔어?’와 같은 방식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럴 때는 볼에 있는 고양이 수염 엘이디도 다른 빛깔을 반짝인다. 시간을 물으면 시간을 알려주고, 날씨를 물어보면 컴퓨터로 인터넷에 연결해 날씨도 알려준다. 전자우편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하며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노래를 부르고 손을 흔든다.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이 로봇이 우리 돈 500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하면 솔직히 고개가 조금 갸웃거려진다.
그렇다면 이 ‘헬로키티 로보’는 왜 만들었을까? 원래의 사용 목적은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기능과 집안 전자 장치들을 모두 연결해 가정 자동화, 곧 홈 오토메이션을 실현하는 장치로 개발되었다. 그보다 더 실질적인 목적은 로봇 기술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현대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영화나 만화 속 로봇들처럼 무한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기술도 이제 겨우 가능하다는 평가를 듣는 정도다. 영화와 만화 속의 슈퍼 로봇과 현재의 기술 차이를 말하자면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와 올림픽 육상선수 정도, 아니, 그 이상의 차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올림픽 육상선수도 갓난아기 때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기본적인 로봇이 차츰 발달하면서 아톰이나 태권브이 같은 로봇이 탄생하는 것 아닐까? 지금은 ‘비싼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지만 그런 실험과 반응들이 쌓이고 쌓이며 슈퍼로봇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한때는 건축 도구였다가 지금은 세계 최고의 장난감이 된 레고블록처럼 말이다.
김혁 장난감수집가·테마파크기획자 blog.naver.com/khegel
※‘김혁의 장난감공화국’은 이번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김혁씨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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