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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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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시칠리아 시골 식당을 뒤집은 음식기자 출현 소동‘별’에 목마른 서구 요리사들, 간장과 된장을 탐하네 주방장 주세페가 식지를 세워 입술에 붙였다. 인류 공통의 보디랭귀지, ‘쉿!’이다. “무슨 일이야?” 주방 식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주세페는 말없이 전표를 가리켰다. 전표의 주문은 달랑 1인분이었다. 주방 창문을 통해 홀을 내다봤다. 홀에 혼자 앉아 엄숙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오르날리스타!”(giornalista) 부주방장 뻬뻬가 소리를 질렀다. 주세페가 두 손바닥을 맞세우고 코앞에 붙인 후 연방 흔들었다. ‘제발 좀 조용히 해’라는 뜻이다. 게으른 요리사가 고집스런 장인으로 둔갑 <감베로 로소>(이탈리아의 권위있는 식당 안내서)? <미슐랭 가이드>? 어디서 온 걸까. 이탈리아에서만 식당 비평을 하는 매체나 기관이 십수 곳이다. 음식 권위자들이 적어도 두 번은 몰래 방문해서 살짝 맛을 보고 간 후 냉정하게 평가해서 등급을 매긴다, 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암행감사(?) 같은 건 드물다. 워낙 깡촌인데다 ‘모두가 형제’인 이탈리아에서 비밀리에 뭘 시험한다는 건 생리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전화 한 통화면 알 수 있는 음식 가격도 틀리고, 주 메뉴도 3년 전 것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는 거다. 하긴, 이런 일이 이탈리아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최근에 미국의 유명 음식, 와인 전문 잡지가 큰 망신을 당했다. 한 음식평론가가 있지도 않은 가공 식당의 방문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더니 그 잡지에서 직접 가본 양 버젓이 소개 기사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 소개 기사가 얼마나 낯 뜨거웠을까 상상해 보시라. ‘친절하게 웃는 서비스가 인상적이며, 유명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는 홀은 압도적 … 음식은 창의성이 넘치며 마치 마티스가 접시 위에 재림한 것처럼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흑,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군. 이뿐만이 아니다. 수준 낮은 기자들이 음식평론가 행세를 해서 웃기는 일도 생긴다. 시장에서 사온 훈제 상어를 놓고 ‘아아, 이런 훈제 조리법은 그야말로 유니크하다’고 읊어대거나, 초짜가 잘못 담아서 엉성해진 접시를 두곤 이렇게 읊조렸다. “일부러 투박하게 담은 파스타 접시는 소박한 시칠리아 시골 식당의 영혼이 느껴진다…” 이뿐이랴. 싱거우면 ‘건강요리’고, 짜면 ‘토속요리’다. 고기가 질기면 ‘싱싱’한 거고, 오래된 고기는 ‘잘 숙성된’ 거다. 장식이 별로 없고 양념이 약하면 ‘재료 본래의 맛을 강조’한 거고, 그 반대면 ‘재료 본래의 성격을 확 바꿔 버리는 창의성’이 있는 거다. 맛이 없으면 ‘서비스가 좋아서 음식 맛 따윈 잊게 만든다’고 하고, 서비스가 개판이면 ‘그래도 음식 맛은 좋다’다. 비싼 수입 식자재를 가져다 쓰면 ‘어렵게 수배하여 공수한 재료’가 있는 거고, 대충 동네에서 나는 재료만 가지고 만들면 ‘재료의 현지화와 로컬푸드 실현’이다. 10년이 지나도 메뉴판이 바뀌지 않는 게으른 요리사도 ‘십년 세월을 한결같이 지키는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이 되는 게 이 바닥의 식당비평이다.
진지한 손님 앞에서 주방 전체가 ‘쉿!’ 각설하고, 식당에 앉아 있는 그 의문의 인물은 누가 봐도 기자처럼 행세했다.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조용히 혼자 앉아서 뭔가를 끼적거리며 식사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주방은 바짝 긴장했다. 그는 심지어 다른 계절의 음식 가격대는 어떻게 되는지, 바캉스 시즌에 두어 달쯤 문을 닫는지 등등 꼬치꼬치 물어댔다. 주세페는 이마에 땀을 잔뜩 흘리며 그의 대답에 촌스러운 사투리로 대답했다. 그는 눈치가 있는 양반이었다. 시칠리아 식당이면 시칠리아답게 사투리도 좀 날려주고 그래야 ‘토속적인 분위기 물씬…’ 하는 기사가 나갈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는 거다. “바캉스에도 저희는 쉬지 않습니다요, 손님! 음식은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손님! …손님! …손님!” 주세페는 파스타가 혹시 덜 익거나 더 익었는지 접시가 나가기 전 일일이 먹어봤다. 그러면서 양미간을 찌푸렸다. ‘너희들, 이따위 음식이 나가서 기자가 별을 안 주면 다 죽을 줄 알아’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뇨키(작은 감자떡)의 개수도 세어보고, 토끼 허릿살의 옆구리가 터져 속이 삐져나오지 않는지 꼼꼼히 점검했다. 수라상이 나가기 전 대령숙수(조선 왕실에서 음식을 담당하던 요리사)처럼 굴었다. 뭐, 그래 봐야 시칠리아 시골 식당의 소박한 음식이었을 뿐인데, 주세페는 뭔가 크게 오버하고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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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주방장(왼쪽)은 한국의 발효음식에 호기심을 보였다. 주세페 바로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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