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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8 19:25 수정 : 2008.10.08 19:25

나지언의 싱글라이프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얼마 전 내한한 히라노 게이이치로의 단편 <최후의 변신>엔 인간의 심리에 관한 놀랄 만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의 인간은 모두 ‘남이 자기를 꿰뚫어봐 주기를 원한다’는 것. 이 사실을 파악한 주인공은 여자를 꼬이거나 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자 할 때 “실은 말이야, 당신은 겉으로 보기엔 냉정하지만 마음은 여리지?”라는 식의 멘트를 사용해 왔다고 고백한다. 만약 나에게 처음 보는 남자가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해 보여도 알고 보면 정이 많죠?”라고 말했다면, 드라마에서처럼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 대신 ‘오래 본 사람들보다 날 더 잘 이해하고 있어’ 하며 감동했을 거다.

요즘 내 친구들은 “점 잘 보는 델 알아뒀는데 보러 안 갈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얼마나 잘 보길래” 하고 슬쩍 물으면 “내가 너무 기가 세서 남자랑 잘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 뭐야”라거나 “내가 작년에 회사 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하더라니까”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다. 혈액형 분석이나 별자리 운세를 열심히 탐독하는 싱글들은, 남에게서 ‘사실 넌 알고 보면 이런 사람’이라는 이해를 받고 싶어 안달한다.

문학이나 음악 등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찾아내려 하는 것도 그 이야기다. 잘 관찰해 보면, 드라마 속 세기의 로맨스는 ‘겉보기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나 ‘겉보기엔 씩씩하지만 속은 여린 여자’만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며 위로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오늘도 남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터벅터벅 돌아온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하며 감정이입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가을이 되면 쉽게 지치고 쉽게 감상적이 되는 관객이 늘어난다는 걸 영화 업계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를 위한 영화가 나왔다며 보러 간 <멋진 하루>에서 까칠한 희수(전도연)가 그날 병운(하정우)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이 움직였다면 이런 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희수야, 넌 역시 안 변했구나.”

모두가 특별할 수 없다는 게 어쩌면 인간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하는 일에서 특별해지거나 혹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서라도 특별해지기 위해 일과 사랑 중 어느 한 가지에 매진하는 수많은 싱글들. 그들은 영화 <론섬 짐>에서 케이시 애플렉의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밤늦게 회사를 지키거나 휴대폰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폰을 뚫어져라 본다. “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지구상에서 말이야, 나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 거나 마찬가지야.”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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