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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8 19:26 수정 : 2008.10.08 19:26

[매거진 esc] 하우 투 스킨십

영화 <미쓰 홍당무>의 한 장면. “우린 진심이었어요!” 되는 일 없는 29살 안면홍조증 환자 양미숙 선생은 유부남 서종철 선생의 아내와 딸 앞에서 억울한 듯 소리친다. 그와의 관계가 짝사랑만은 아니었다고. 이유인즉슨 지지난해 회식에서 그가 자기 옆자리에 앉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자신에게 은밀한 터치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식 후 만취한 상태에서 몸을 못 가누어 그녀에게 잠시 기댄 것이 사건의 전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그녀는 사랑을 고백받은 여자가 (스스로) 된 것이다. 그녀는 외로웠고, 그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한 친구가 생각났다. 퇴근 후 술 한잔 하자며 만난 그녀. 각별한 사이였지만, 그즈음 바쁘다는 핑계로 소원해진 상태였다. 2차로 자리를 옮기는 중 그녀의 등을 살짝 꼬집으며 “안 본 사이에 살 좀 붙었네” 하고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그녀가 버럭(진심으로)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그만 좀 해!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래!” 하며 앞으로 내달리는 그녀를 당황스런 눈길로 쫓았던 것 같다. 당시 내 친구는 힘들게 끌어온 연애의 정리를 앞두고 있었다. 친구는 외로웠고 나를 의지하고 싶어 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한 삶의 이유로 ‘사랑의 결핍’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왕따로 지낸 양미숙, 실연으로 큰 상실감에 빠진 내 친구는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이란 그 감정에 시달리고 있었을 거다.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댈 수 있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는 증거도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작은 스킨십이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동력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극도의 불쾌함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럴 바에야 긍정의 스킨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주 <코스모폴리탄>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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