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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5 17:39 수정 : 2008.10.15 17:39

〈무서운 그림〉

[매거진 esc] 이다혜의 한 줄로 한 권 읽기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세미콜론 펴냄

“젊음의 아름다움이 각광받을수록 늙음은 조롱받고 매도되었다.”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 고생 안 한 얼굴이고 예쁜 얼굴로 인정받는다. 화장품을 사러 가면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지금 신경쓰지 않으면 기미, 주근깨, 주름으로 고생한다”는 상담원들의 공격을 받고 지갑을 열게 된다. 배우들은 때로 보톡스 때문에 웃지도 찡그리지도 못하는 팽팽한 얼굴로 등장하지만 이제 다 자연스런 광경이다. 노화방지 화장품도 보톡스도 없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나이듦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완벽한 육체를 찬양하던 시대의 그늘이다. 나이든 여자를 그린 그림에는 세월의 주름이라는 객관적 지표와 함께 추하고 기괴한 주관적 해석도 곁들여졌다.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을 수록 역겹게. <무서운 그림>은 제목 그대로 서양미술사의 무서운 그림을 골라 그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뭉크의 <사춘기>처럼 누가 봐도 불안해지는 그림도 등장하지만, 모르고 보면 그저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듯한 드가의 그림 역시 분석의 대상이 된다. 무용수를 바라보는 양복 입은 신사의 실루엣이 사실 19세기 중반 파리 발레계의 타락상을 노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예전 같은 눈으로 드가의 <에투알>을 볼 수 없게 된다. 마라를 예수로,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테크닉에 능했던 다비드가 그린 앙투아네트 왕비 최후의 초상에는 악의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다비드의 개인사를 알고 보면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 그림이다. 누가 봐도 음산하거나 소름끼치는 그림도 있지만, ‘아는 만큼’ 무서운 그림도 있다는 말이다. 연애를 갓 시작한 사람은 “얘는 알고 보면 착한 애야”라고 말하고 결혼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이 사람도 알고 보면 짜증나”라고 하는 이치를 따져보면 ‘아는 만큼’ 무섭다는 말의 뜻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최근 내가 가장 두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두산 팬인 친구와 함께 엘지(LG) 트윈스의 롯데전을 보러 갔을 때였다. 서울 연고인 두산과 엘지는 오랜 라이벌로, 서로를 싫어하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엘지가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음에도 많은 팬들이 롯데를 상대로 열띤 응원을 펼치는 모습을 본 두산 팬 친구가 “엘지 팬은 진짜 야구를 사랑하는구나. 내년에는 잘했으면 좋겠네”라고 격려하지 않겠는가.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우리 팀이 진짜 못하는구나. 두산 팬한테 욕먹어도 이기는 팀이면 좋겠다. 가을야구는 롯데 팬만의 염원은 아니었다.

이다혜 좌충우돌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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