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5 21:02
수정 : 2008.10.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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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는 히가시차야 거리. 지금도 저녁이면 샤미센 소리가 울려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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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에도시대 정취 즐길 수 있는 일본 가나자와, 전통 공예 체험으로 여성 관광객에 손짓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대표적인 두 도시 도쿄와 교토가 각각을 명징하게 대변할 것이다. 도쿄가 현대적이고 코즈모폴리턴적인 도시인 데 반해 교토는 전통의 일본색이 물씬한 오래된 도시다.
후자 취향이라면 일본 중북부에 위치한 이시카와현의 고도 가나자와를 ‘나의 두번째 일본여행지’로 선택할 만하다. 4세기 전 에도시대의 정취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가나자와는 궁궐의 도시 교토만큼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 옛날 무사와 평민들이 누비고 다녔던 좁은 번화한 골목 안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매혹적인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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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차야 거리 입구의 멋진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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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금빛에 눈이 부셔지는 금박 가게의 다양한 기념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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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일본 최대 유흥가, 히가시차야가이
오래된 동네·도시가 대개 그렇듯 가나자와는 배낭을 메고 열심히 전진하기보다는 가벼운 몸, 운동화 차림으로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낡은 목조건물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특히 ‘동쪽 찻집 거리’라는 뜻의 히가시차야가이는 과거로 떠나는 가나자와 여행의 출발점 같은 곳이다. 찻집 거리라고 해서 전통찻집이 즐비하게 서 있는 거리를 생각하면 틀렸다. 이곳은 가나자와가 일본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던 17세기 최고의 유흥가다. 이곳의 찻집 거리 네 곳 중에 가장 번성했던 곳, 그러니까 게이샤들의 웃음소리와 샤미센 연주 소리가 가장 크게 흘러나왔던 곳이 히가시차야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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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노무라의 집에 잘 조경된 정원의 연못을 헤엄치는 금빛 잉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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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10여명의 게이샤가 일하고 있는 찻집 중 한 곳을 들어갔다. 정갈한 다다미와 붉은 벽, 고즈넉하게 발이 내려진 창가에 노란 등을 켜 놓은 이곳의 주인인 게이샤가 관광객들에게 무릎 꿇고 절한다. 옛날 무사들이 게이샤의 공연을 보면서 벌이던 술판은 지금은 부유한 사업가나 연예인들의 차지가 돼서 한 번에 90분씩 공연과 술자리가 벌어진다고 한다. 1인당 5만엔 정도 돈이 든다고 하니 웬만한 관광객들은 엄두 못 낼 주연(酒宴)이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들과 어울리지 않게 뒤쪽에는 개구멍이라고 할 만한 좁은 계단과 통로가 아직도 남아 있다. 불콰해진 손님이 정문 대신 뒷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배려한 건축구조였다나.
몇 해 전 문화재 거리로 대대적으로 정비를 한 히가시차야 골목의 주빈은 술꾼 대신 관광객들이다. 전통 요정뿐 아니라 가나자와의 대표적 전통공예인 하쿠(금박 공예)나 가가유젠(직물염색)을 감상하거나 체험할 수 있다. ‘금박’(金箔)이라고 간판이 내걸린 가게의 문을 열었다. 금종이, 금커튼, 금장신구, 금접시 등 온통 금 천지인 가게를 지나 뒷마당으로 가니, 헉, 금 건물이 나온다. 샛노란 금색이 번쩍이는 이 건물은 얇게 펴바른 순금 종이 2만장으로 벽을 발랐다. 밖에서 목을 빼고 들여다본 내벽 역시 순도 100% 금. 그러나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그림의 떡, 순금 눈요기가 아니다. 직접 금을 만져볼 수도, 원한다면 먹어볼(!) 수도 있다. 금박공예 체험장이 바로 그것. 600엔을 내고 원하는 그림을 고르면 그림이 그려진 도톰한 종이판과 갖가지 반짝이들, 그리고 손바닥만한 순금을 한 장 준다. 물론 주먹만하지는 않다. 크기는 가로세로 10㎝지만 두께는 1만분의 1㎜, 가벼운 콧김에도 훅 날아갈 얇은 금박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가나자와 금박 기술의 열쇳말이다. 풀이 묻어 있는 그림에 금과 다른 반짝이들을 불면 날아갈까 조심조심 바르고 뿌려서 붓으로 살살 털어내니 제법 그럴듯한 금박 그림이 완성된다. 나름 고급스러운 기념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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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로쿠엔 호숫가 앞의 관광기념 촬영 장소. 외국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언제나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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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나도 화과자 장인
직접 만들어본 금박공예처럼 단지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뭔가를 직접 만들어보고 체험해볼 수 있다는 게 가나자와 여행의 큰 재미다. 특히 어렵지 않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체험이 많다. 금박공예 가게나 가가유젠 전문점 등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서 붓을 들고 작업 삼매경에 빠진 젊은 여성들을 흔히 본다. 예상 밖의 대만족이었던 금박공예 체험에 힘입어 이번에는 가나자와의 또다른 명물인 화과자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다. 가나자와는 교토·마쓰에와 더불어 일본의 3대 과자 명산지라고. 이시카와현 관광물산관에서 화과자처럼 동글등글하게 생긴 장인의 지도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 재료를 받았다. 분홍색 고물을 손으로 돌돌 빚어 깨끗한 거즈로 싼 뒤 가운데를 꾹 누르니 귀여운 꽃 한송이가 피었다. 보라색 고물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과꽃처럼 잎을 만들었고, 초록색은 체를 이용해 가루를 날렸다. 엄청난 손재주가 필요할 것처럼 보이던 화과자 3개를 뚝딱 만들고 나니 자부심마저 생긴다. 돌아가면 자랑하기 위해 완성한 화과자를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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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일본 농민의 모자를 쓰고 겐로쿠엔을 가꾸는 미화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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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본의 3대 정원에 드는 겐로쿠엔으로 향했다. 겐로쿠엔이란 6개의 빼어난 절경을 가진 정원이라는 뜻. 1.4㏊의 넓은 면적 곳곳이 일본인들 특유의 섬세함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에도시대 가나자와의 명문가인 마에다 가문에서 대대로 꾸며온 곳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영주의 정원이란다. 흙과 돌들을 축축하게 감싸고 있는 이끼가 세월을 알려주는 겐로쿠엔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분수도 있다. 지금 보면 초라할 만큼 소박한 분수지만 백년 넘게 한자리에서 꾸준히 물을 뿜어온 자태가 사뭇 고고하게 느껴진다. 겐로쿠엔과 그 옆에 붙어 있는 가나자와성은 이 도시의 가장 중심에 있다. 무사의 도시 가나자와에서 군림했던 영주의 막강한 힘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건축물과 공원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같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산책로
이곳이 당시 최고 권력의 거점이었다면 시청을 지나 도착한 무사의 거리(나가마치 무사 저택지)는 당시의 생활인 무사들이 살던 동네다. 지금은 고급 주택가로 바뀌어 있는 게 한국의 가회동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집의 대문이 조금 열려 있어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작고 검소해 보이는 정원이 눈을 사로잡는다. 무사의 거리 모델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해 문을 연 무사 노무라의 집은 마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오픈세트장처럼 보인다. 어두컴컴하고 천장이 낮은 2층의 작은 방에 앉아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는 정원의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다. 일본 상투 촌마게를 한 무사 노무라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도 같다. 그 옛날 사람들이 밟고 만지던 공간을 직접 점유해 보는 건 확실히 묘한 기분을 일으킨다.
갑자기 쏟아진 비가 그칠 무렵 노무라의 집을 나왔다. 산책길이 끝날 무렵 몸이 노곤해졌다. 노곤하지만 피곤하다고 말하고는 싶지 않은 오래되고 정갈한 산책길, 가나자와를 떠나 다시 시계를 맞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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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가나자와를 호령하던 영주가 살던 가나자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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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거리는 한국의 가회동처럼 고급스러운 전통 주택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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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글·사진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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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 여행쪽지
금접시를 만들어 보아요
◎ 가는 길 | 매주 월·수·금은 대한항공에서 고마쓰 공항으로, 화·금·일은 아시아나에서 도야마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이 있다. 각 공항에서 버스나 제이아르(JR) 열차를 타고 30~40분 정도 가면 가나자와 도심에 도착한다. 부산에는 매주 월요일 자정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가나자와항에 도착하는 페리도 운항된다.
◎ 공예 체험 방법 | 히가시차야가이에는 금박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상점이 다섯 군데 있다. 상점에서 신청하면 정원이 차는 대로 체험이 가능하며 1000엔이 안 되는 가격에 금박 접시나 작은 상자, 젓가락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소요 시간은 30~60분. 화과자 체험은 이시카와현 관광물산관과 이시카와현 과자문화회관에서 할 수 있다. 이시카와현 관광물산관에서는 화과자 4개를 만드는 데 1200엔을 낸다. 만든 과자는 선물상자에 포장해 가져가며 500엔의 선물권을 받아서 저렴하게 파는 토산품 음식들도 살 수 있다. 일본 관광청 누리집(www.welcometojapan.or.kr)이나 가나자와시 누리집(www.kanazawa-tourism.com/korean/main)에 들어가면 가나자와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및 관광·숙박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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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들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금박공예 체험(사진 위)과 화과자 만들기 체험에서 만들어 본 화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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