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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5 21:12 수정 : 2008.10.18 14:29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도로는 운전자에게 새로운 정취를 선사한다. 노동효

[매거진 esc] 노동효의 아웃 오브 서울 ③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 운문사에서 발견한 비밀의 화원

나 고향에 있을 때는 그리울 줄 몰랐다 / 외롭고 지쳐 잠들던 서울의 밤 / 눈 뜨는 아침엔 언제나 / 천정에서 푸른 바다가 출렁거렸다 / 많이 지쳤구나, 왔다 가렴 / 그럴 때면 완행 밤기차를 타고 내려가 당신의 품에 안기곤 했다 / 도시에서 바싹 마른 솜 같았던 나 / 바다의 젖꼭지를 물고 내 영혼이 흠뻑 / 젖을 때까지 빨곤 했더랬다 / 어머니.

- 부산 앞바다

운문사에 있는 소나무. 멀리서 보면 숲 같지만 가지가 울창하게 뻗은 모습이다. 김은주

정오의 햇살이 수직으로 꽂히는 동해 바다

스무 살 무렵부터 집 떠나 살았던 나는 어느 날 <그랑 블루>의 한 장면처럼 바다가 천장에서 출렁거리는 환각을 본 적이 있다. 뤼크 베송이 만든 그 영화를 보기 전이었고, 그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이었다. 이렇다 하게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객지생활에 몹시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월미도로 갔다. 그러나 동해와 남해만 다녔던 나에게 인천 앞바다는 왠지 모르게 바다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바다라면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모래사장도 없었고, 해송도 없었다. 육지 끝에서 내려다본 바닷물 위엔 기름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실망한 채 돌아와야 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또다시 천장에서 바다가 출렁거리는 환각을 보았다. 아무래도 바다를 보고 와야겠구나. 결국 나는 경부선 완행 밤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바다! 순간 방전된 전지가 충전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바닷가나 항구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고향 떠나 객지생활을 하다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리라. 사방이 막혀 있는 도시를 벗어나 바다와 ‘접속’하는 순간 마른 솜이 물을 먹듯 바다의 에너지를 흠뻑 빨아들이는, 그 에너지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번져가는 느낌을.

태백에서 가곡천을 따라 내려오던 우리는 드디어 바다와 ‘접속’했다. 찌리릿. 길은 ‘동해안 일주 코스’로 널리 알려진 7번 국도. 월천교 무렵에서 신(新)7번 국도와 구(舊)07번 국도로 나뉘는데, 빨리 가자면 신7번 국도를, 바다 풍경과 자주 만나려면 구7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아무렴 제 시간에 닿아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 우리는 구7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쨍! 정오를 갓 지난 햇살이 수직으로 꽂히는 바다는 취옥빛으로 반짝거렸다. 오래간만에 보는 선명한 명도와 채도의 바다 풍경. 이왕 7번 국도를 지나는데 바닷가 구경도 한번 해보자. 경상북도로 도 경계를 넘어갈 무렵 K가 상기된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러자꾸나.

평일의 해변에는 모래사장만이 길게 뻗어 있을 뿐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해상구조대가 사용하는 철골 망루만이 수평선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빨갛게 녹슨 3층 망루 위 의자 하나. 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텅 빈 해변엔 말릴 사람도, 지키는 사람도 없으니 무작정 녹슨 사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사다리 끝에는 잠수함 해치처럼 쇠문이 달려 있었다. 텅. 열어젖히고 올라가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변에 자리 잡은 고층 콘도의 베란다에서 바다를 내려다본 적도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다를 내려다본 건 처음이다.

-바다 한가운데 다이빙대 같은 데서 두 여자가 바다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영화 제목이 뭐였지?


-파란 대문.

마침 나도 철골 망루에 앉아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을 떠올렸는데 K도 같은 장면을 떠올렸던 모양이었다. 영어 제목 , 영어 카피 . 그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새장 여인숙’에도 한 명의 창녀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동서(?)가 되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사는 여대생이 몸 아픈 ‘동갑내기’ 창녀를 대신하여 손님을 받는 등 우리들의 일상을 뒤흔드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10년이 지나도 뚜렷이 남아 있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바다 밑에서 부감으로 다이빙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여자를 보여주는데, 화면 가득 금붕어가 헤엄치던 장면. 바다에서 금붕어가 어떻게 살 수 있냐고 ‘현실적’으로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바다에 놓아준 금붕어를 헤엄치게 하는 게 김기덕의 영화다. 어이쿠! 해풍이 모자를 벗기려는 찰나 재빨리 움켜쥐었다. 높이 올라온 만큼 바람도 거세구나. 모자가 날릴까 봐 잔뜩 눌러쓰고 녹슨 사다리를 내려왔다. 이제 또 길을 떠나야지.

한낮에 옥빛으로 빛나는 바다. 노동효

정철이 월송정에 다시 온다면 무슨 꿈을 꿀까

7번 국도가 바다에서 멀어지면 바다와 맞붙은 지방도로 들고 나며 후정, 죽변, 봉평, 양정, 울진, 오산, 덕산, 망양을 지나 평해에서 월송정에 이르렀다. 관동팔경 중 최남단 명승지인 월송정은 그중 사람들이 가장 덜 찾는 곳. 그런 탓일까, 남한에 있는 여섯 명승지 중 한가로운 정취를 느끼기엔 가장 좋다. 울창하고 너른 소나무숲 아래를 거닐며 산책을 하기도 좋고, 도톰하게 깔린 솔잎 위에 앉아 책 읽기도 좋고, 나무 그늘 아래 누워 한숨 자기도 좋다. 다만 안타까운 게 있다면 해안선을 따라 철조망이 바다와 송림을 갈라놓고, 2006년 인근에 방파제가 생기면서 너비 100미터에 이르던 모래사장이 송림 앞까지 침식되었고, 평평하던 모래사장이 높이 2미터에 달하는 모래절벽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월송정에서 소나무 뿌리를 베고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신선을 만나 술 얻어 마시고 놀았다던 정철. 그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어떤 꿈을 꾸겠는가? 신선주는 고사하고 냉수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겠지. M. 나이트 시아말란 감독의 <해프닝>처럼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화가 난 소나무숲이 산소 대신 자살가스를 내뿜을까 갑자기 두려워진다. 그래, 우리는 개발이란 이름으로 날마다 자살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우리 오늘은 어디서 잘까?

-아무래도 거제도까지 내려가긴 힘들겠지?

-운문사에서 자는 건 어떠냐? 하룻밤 신세 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인데 우리를 재워 줄까요?

-일단 J스님께 전화를 걸어볼게.

L형이 여쭈니 J스님께선 흔쾌히 대답하셨다. 오너라. 그렇게 해서 우리는 포항에서부터 남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경주를 지나 청도군으로 들어선 뒤 운문호를 끼고 달려 운문사 진입로에 들어서자 홍송이 좌우로 울창하다. 아, 이래서 운문사는 걸어서 들어가라고 하는 거구나. J스님과 만나기로 한 운문사 종무소에 도착한 것은 공양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선 손님을 맞이하는 지객 스님의 안내를 받아 공양간에서 저녁 밥상을 받았는데, 사찰에서 그렇게 맛난 식사를 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정갈하고 풍성한 반찬이 식탁 위에 가득한데 모든 나물과 채소를 스님들께서 울력으로 키우신 것이라 한다. 국수와 밥은 물론이고 찬그릇까지 깨끗이 비울 무렵 J스님께서 나타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가한 지가 서른 해가 지났다지만 스님께서는 마치 소녀 같으시다.

-내일 일찍 큰스님을 모시고 러시아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내일은 시간이 없어. 해 지기 전에 구경시켜 줘야 하는데, 일어나자.

최근 시낭송집 <구름 나그네>를 내기도 하신 스님은 청아한 목소리로 절 마당을 지나가는 동안 능소화, 붓꽃, 꽈리꽃, 청매, 영산홍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안녕! 우리는 꽃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스님의 뒤를 따라 극락교를 건너갔는데, 그 곳은 과연 극락이었다. 마음 심(心)자 형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며, 자귀나무, 후박나무, 찔레꽃, 할미꽃, 황매, 조팝나무, 매화나무, 해당화, 부처꽃, 창포, 돌단풍, 쑥부쟁이, 호두나무, 치자나무, 노간주나무, 갯기름나물, 노란별꽃, 계수나무, 연달래, 진달래, 도라지, 단풍나무, 목련 …… 갖은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정원에서 포행을 하다 보면 고라니와 산토끼도 만난다고 했다.

운문사는 절과 소나무가 하나가 된 느낌이다. 김은주

비구니 사찰에서 남정네들이 받은 따뜻한 환대

말년에 운문사 아래서 여관을 하고 싶다던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가지’를 들었는데 - 첫째는 바라보는 이의 눈도 마음도 어질게 하는 학인 스님들이고, 둘째는 장엄한 아침 예불이고,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고, 넷째는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이고, 다섯째는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셨다는 일연 스님. 그러나 그는 아무래도 한 가지를 감춘 듯하다. 물론 일반인 출입금지의 극락교 너머 죽림헌과 목우정을 언급하긴 했지만, 어쩌면 10년 전에는 그곳이 지금처럼 꾸며져 있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극락교 너머 ‘비밀의 화원’은 다섯 가지에 하나 더 덧붙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운문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곳인지라 남정네들 누울 자리는 따로 없을 줄 알았는데 J스님께서 손님방을 마련해 주셨다. 개울가에 자리한 호젓한 방 한 칸.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가지’ 중 아직 보지 못한 아침 예불을 보려면 일찍 일어나야겠지. 일찌감치 자리 펴고 누웠는데 물 흐르는 소리에 좋다, 좋다 속으로 연방 추임새를 넣다가 눈을 뜨니, 어느새 구름문(雲門)을 젖히고 나온 달빛이 문살 사이로 들어와 있었더라.

글 노동효 <길 위의 칸타빌레> 저자

여행쪽지

옛 7번국도 타고 동해로 고고씽

◎ 죽변 용추곶 | 죽변은 대나무가 많다고 붙은 땅이름이다. 장기반도 끝, 호미곶을 제외하면 동해안에서 바다로 가장 많이 뻗어 나간 곳이 죽변 용추곶이다. 호미곶을 호랑이 꼬리라 하여 호미곶이라 하듯, 용추곶은 용의 꼬리라 하여 용추곶이라 한다. 파도와 대숲으로 둘러싸인 용추곶에는 1910년에 만든 죽변 등대가 서 있다. 등탑 높이 16m, 흰색의 팔각형 콘크리트 구조로 불빛은 20초에 한 번 반짝이며 약 37km까지 불빛이 전달된다고 한다. 등대 앞바다에는 암초가 깔려 있는데 암초의 중간 부분에 용소라고 하는 곳이 있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던 곳이라 전해 내려온다. 등대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2004년 <폭풍 속으로>라는 드라마를 찍기도 했다.

◎ 영덕 해맞이 공원 | 해송이 울창하던 창포리 일대가 97년 대형 산불로 페허가 되어 방치되다, 해안선과 무인 등대를 활용한 인공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산불 피해목으로 전망테크와 덩굴시렁 및 침목 계단 산책로를 조성했고, 야생화 2만3천여 포기와 900여 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었다. 1천500여 나무계단이 전망테크와 덩굴시렁과 덩굴시렁, 해안도로와 바다까지를 거미줄처럼 엮여 산책로를 이루고 있다. 두 개의 전망테크는 선명한 해돋이를 찍을 수 있다는 매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으며, 영덕 풍력발전단지가 가까이 있다. 사전 지식 없이 이곳을 지나가게 되는 사람은 높이 80m, 직경 82m의 거대한 날개가 회전하는 구조물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인공 구조물과 바다, 그리고 구부러지는 도로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 강-축 해안도로 | 7번 국도가 확장공사를 하면서 내륙으로 들어서는 구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라는 명성만 믿고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정작 아름다운 풍광을 놓치기 싶다. 영덕 구간이 특히 심한데 빡빡한 일정이 아니라면 되도록 ‘옛 7번 국도’를 따라가야 제대로 된 동해안 일주를 할 수 있고 대진 해수욕장부터부터는 20번 지방도로 들어서야 해안선을 따라 동해와 나란히 달리는 해안도로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축산항과 강구항을 지난다고 해서 강-축 해안도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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