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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갑이 터질까 봐, 쿠폰을 예쁘게 보관해주기도 한다. 카페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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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지갑을 뚱뚱하게 만드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지폐 뭉치를 기관총 탄창처럼 채워도 되고, 신용카드로 무장을 완비해도 되고, 영수증을 시간순으로 모아 일기 대신 간직해도 된다. 내 지갑이 통통한 뱃속을 견디다 못해 찢어지려고 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각종 카페의 쿠폰 때문이다. 단골 카페의 쿠폰을 들고 다니며 보너스 음료를 얻어마시는 일은 현대인의 생존 기술이다. 멋진 디자인의 쿠폰은 그 카페의 시민임을 증명하는 증서로도 여겨진다. 어떤 첩보를 따르면, 여자 친구의 사진 대신 카페 쿠폰을 들고 다니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군인들도 있단다. 그러나 한 나라의 시민으로 머무를 수 없는 인간도 있는 법이다. 나처럼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는 유랑객은 카페의 입국 카운터에서 비자 대용의 쿠폰을 찾느라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어떤 카페는 쿠폰에 예쁜 도장을 채워가는 재미 때문에 들락거리게도 된다. 그런데 막상 쿠폰과 음료를 바꿔야 할 순간이 되면, 그동안 찍어둔 도장들이 아까워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이 쿠폰 덕분에 가장 싼 음료인 에스프레소 열 잔을 모아 ‘카페 럭셔리 왜 비싼지 주인도 몰라치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우리 같은 뜨내기들을 물리치기 위해서일까? 요즘 카페 체인들이 쿠폰을 기한제로 발행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지난번 커피빈에 갔을 때 종업원이 쿠폰 색을 보더니 단호하게 말하는 거다. “손님, 이 쿠폰은 기한이 지났는데요.” “그럴 리가요?” 나는 쿠폰의 앞뒤를 꼼꼼히 뒤져보게 했다. 어디에도 기한은 적혀 있지 않다. 쿠폰 기한제가 생기기 전에 발행된 완전 오픈된 쿠폰이니까. 내가 카페 주인이라면 좀 세련된 꼼수를 부리리라. 커피 한잔에 도장 하나는 식상하다. 과테말라, 예멘,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커피를 한 번씩 마시는 미션을 만들어, 쿠폰이라는 여권에 세계일주하는 재미를 차곡차곡 채워가게 하는 거다. 임무가 완수되면 상파울루에 있는 자매 카페의 음료권을 준다. 항공료는 본인 부담.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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