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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허릿살 구멍냈다 내 허리 구멍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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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특별한 재료를 사랑했던 주방장이 절대로 쓰지 않았던 두 가지 주방장 주세페가 오후가 되어도 식당에 나타나지 않으면 주방 식구들은 불안에 빠진다. 머잖아 그의 낡은 르노 다목적 차에서 요리사들 목을 조르는 원수 같은 식재료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바닷가든, 산이든, 들이든 그는 차를 몰고 다니며 삿대질을 해가며 물건들을 낚아챈다. 특히 값이 유별나게 싸거나 질이 최고라는 소문이 돌면 그는 동네 반장처럼 어김없이 등장해서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다. “어이, 페데리코! 그 재료 딴 놈 주면 나 거래 끊을 거야. 네 녀석 어려울 때 팔아준 사람이 누구냐고!” 그러고는 다른 집에 배달하려고 잘 꾸려둔 물건을 홱 집어서 자기 차에 실어 버린다. 그런 다음 옆자리에 앉은 내게 말한다. “페데리코란 녀석은 물건값을 얼마나 바가지 씌우는지, 이 동네에 소문이 짜하다구. 저 엿 같은 보따리에 든 걸 잘 살펴봐. 조금이라도 물이 안 좋으면 물러야 하니까.” 어이 한국 사람, 박두익을 아느냐? 주세페가 물건을 고르는 방법은 아주 특이하다. 이번 경우처럼 다른 사람에게 갈 재료를 뺏기도 하고, 어디서 생산량 초과로 고민하는 게 있으면 헐값에 잔뜩 사들여서 저장해 두고 쓰기도 한다. 아, 물론 이걸 밤새 다듬어야 하는 건 요리사들의 몫이다. 3박 4일 동안 대충 눈 붙이며 버섯을 다듬었던 끔찍한 기억도 있다. 버섯이 싱싱할 때 다듬어야 향을 보존한 채로 냉동해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해물업자를 다루는 방법은 정말 유별나다. 시칠리아 깡촌인 이 마을에는 해물집이 여럿 있는데, 그는 주로 한 집만 이용했다. 그런데 꼭 다른 집을 먼저 들른다. 그래서 요즘 뭐가 좋은지, 값이 싼지 미리 다 파악을 해두는 것이다. 사지도 않으면서 괜히 나를 대동하곤 거들먹거리며 정문의 구슬 차양을 들치며 들어선다. “어이, 친구. 요새 경기는 좋은가? 아, 이 친구를 소개하지. 한국에서 온 양반이야. 우리 집에서 요리사 견습을 하고 있다네.” 그 다음에 진짜로 물건을 살 친구네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설사 친구라도 미리 시장 상황을 알아두지 않으면 바가지를 쓸 수 있다는 게 주세페의 생각이었다. 하긴, 맞는 말이다. 장사꾼 말을 믿는 건 바보 짓이니까. 언젠가 해물집 주인 페데리코는 내게 “박두익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남과 북의 차이를 모를뿐더러 66년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주인공 박두익이야말로 너희 민족의 영웅 아니겠냐는 투다. 그러고는, 직접 박두익의 황금 슛 동작을 선보인다. 생선 앞치마를 펄럭이며 미끄러운 장화발로 그는 주세페와 나를 날렵하게 제치곤 이탈리아팀을 썩은 토마토 세례에 빠뜨렸던 박두익의 슛을 재현한다. 하지만 그가 그 경기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다. 주방장 주세페가 기억력을 되살려 수정을 해줬으니까 말이다. “아냐, 아냐. 박두익은 헤딩으로 골을 넣었지. 티로 디 테스타(헤딩 슛)!” 주세페는 벗겨진 이마로 박두익의 헤딩을 실감나게 재현하느라 땀이 송송 맺힌다. 그러면 페데리코는 마치 이탈리아팀의 수비수라도 되는 양 주세페의 옆에 바짝 붙어서 조연 노릇을 훌륭히 수행한다. 척척 맞는 2인극을 보며 나는 좀 당황했다. 박두익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뭘 좀 알아야 헤딩 장면을 교정해 주거나 현장감을 드높이는 이탈리아팀 수비수 역으로라도 등장했을 텐데. 페데리코는 길게 탄식을 했다. 당시 30년이 더 지난 세월을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아아, 내가 2002년에 거기 없었던 건 정말 다행이다. 그랬다면, 페데리코뿐만 아니라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안정환의 백헤딩 슛을 되살려 보라고 달달 볶았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니, 토티를 퇴장시켰던 모레노 주심에 대한 저주를 내게 퍼부었을 것 같다. 실제 나는 그 경기 이후 주세페의 국제전화를 받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조차 ‘모레노를 너희들이 매수했지?’라고 나를 추궁했으니까 말이다. 한국인의 매운 손끝으로 달팽이 살을 발라 페데리코가 66년의 추억에 빠져 있을 때 주세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물건 꾸러미를 어깨에 들쳐메었다. 그가 해물 업자인 페데리코에게서 산 건 뜻밖에도 바다 물건이 아니라 달팽이였다. 들판에 풀을 길러 하우스를 씌우면 달팽이 양식장이 되는데, 통통하고 비린 맛이 없는 고소한 달팽이였다. 흔히 달팽이는 프랑스 요리의 재료인 줄만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이걸 데치고 찌고 삶고 구워서 온갖 요리를 만든다. 레드와인과 버섯을 곁들여서 프랑스 버건디식 요리를 하는가 하면, 삶아서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에 넣기도 한다. 다만 몇 가지 손질이 필요하다. 그저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뚜껑을 닫아두는 일이 먼저다. 그러면 달팽이들이 굶어서 몸속의 불순물을 토해낸다. 이 냄새가 보통이 아니어서 항아리 뚜껑을 여는 순간 코를 싸쥐어야 한다. 뚜껑을 열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달팽이들이 대탈출을 감행하느라고 모두 뚜껑 밑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뚜껑이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지지만, 하루이틀이 지나면 점점 뚜껑이 가벼워진다. 기운이 빠진 녀석들이 모두 항아리 바닥으로 낙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세페는 이걸 깨끗한 물에 담가 헹군다. 그러고는 화이트와인과 바질, 길가에서 꺾어온 야생 허브를 듬뿍 넣어 팔팔 끓인다. 삶은 달팽이를 식힌 뒤 모든 요리사들이 달라붙어 살을 발라낸다. 자그마한 달팽이 몸에서 살을 발라내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가는 핀으로 살을 찍어내어 내장을 버리고 기름에 담가 저장한다. 한국인의 매운 손끝은 이 순간 빛을 발한다. 요리 경력도 없는 내가 달팽이만큼은 가장 빨리 살을 발라낸다. 발라낸 살은 갓 짜낸 올리브기름에 볶고, 삶은 채소를 넣어 만두를 빚는다. 종종 이탈리아에선 요리 이름이 길어진다. 이런저런 재료의 이력과 조리법을 밝히는 게 기본인 까닭이다. 이런 식이다. -에트나산 기슭에서 자란 달팽이 살을 발라 직접 기른 양배추와 함께 최상급의 올리브기름에 볶아 소를 채운 라비올리. 여기다 한 줄 더 써넣을 수도 있다. -주방장 친구 페데리코네 가게에서 직접 받아다 요리사들을 들들 볶아 살을 발라낸 후 만든 라비올리, 운운. 주세페는 이처럼 특별한 재료를 가져다 쓰는 걸 아주 좋아했다. 특히, 자기가 직접 재배나 사육, 또는 사냥에 관여한 걸 최고로 쳤고 적어도 자기가 믿을 만한 친구에게서 사들인 걸 자랑스러워했다. 산에서 잡은 토끼라도 들여온 날이면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했다. 요리사들이 토끼의 연약한 허릿살을 찢어놓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연방 잔소리를 했다. “허릿살에 구멍을 내는 놈이 있으면 네놈 허리도 구멍이 날 줄 알아. 이게 어떻게 구한 토끼인 줄 모르단 말이야?” 온갖 신기한 재료를 쓰면서도 그가 쓰지 않는 게 딱 두 가지 있었다.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와 오리 간인 푸아그라였다. 캐비아는 비싸기도 했지만, 불법으로 어획되거나 양식된 것이 많아서 제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고, 오리 간 푸아그라는 다들 알다시피 사육 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거론했다. “밀라노나 토리노 녀석들이 돈 많은 영국놈과 미국놈들에게 아부하느라고 푸아그라를 요리하는 걸 나도 잘 알지. 그건 이탈리아가 아니라고, 프렌치 요리를 하다니, 맙소사!” 그는 푸아그라를 주무르는 것 자체를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라고 우겼다. 그러나 그건 틀린 말이었다. 원래 옛날부터 이탈리아도 푸아그라를 먹었다. 게다가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피에몬테 지방의 토리노나 최고급 식당이 몰려 있는 밀라노에서 푸아그라가 많이 등장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세페는 내게 ‘푸아그라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내가 알려주지’ 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주 불만스러운 상황에 그가 흥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슬슬 몸을 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팔에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세페는 입을 크게 벌린 후 주먹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집어넣는 시늉을 했다. 너무 진지하게 연기를 한 탓인지 구역질이 나는 듯 눈물까지 살짝 비쳤다.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 종교적이기까지 했던 푸아그라 혐오증 “이렇게, 이렇게 … 옥수수를 강제로 먹인다고. 아, 물론 마이스 아메리카노(mais americano), 미제 옥수수야. 이걸 억지로 먹는 오리는 구역질이 나서 눈물을 질질 흘리지. 그건 고문이야.(내가 고문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채찍으로 뭔가를 두들겨 패는 시늉을 곁들이며) 알겠어? 고문이라고.” 지나치게 음식을 많이 먹어 지방간이 생긴 오리를 꼼짝 못하게 가둬둔다. 운동을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사육업자들은 오리를 지속적인 환자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불과 작은 고구마만 한 오리의 간이 돼지 간처럼 부풀어오른다. “닭이나 오리나 덩치가 비슷하지. 로베르토! 닭 간 크기를 알아?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오리 간도 비슷해, 그걸 600그램이 넘게 만들려면 사람이 오리에게 무슨 짓을 해야 하지?” 그는 정말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듯이 처절한 표정 연기를 곁들였다. 그가 성당에서 예수상에 기도하던 그 표정보다 훨씬 리얼해서 나는 오금이 저렸다. 그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푸아그라 혐오는 내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나는 지금도 푸아그라를 요리하지 않는다. 주세페가 주먹을 자신의 입에 밀어넣으며 흘린 것 같은 눈물 한 방울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박찬일 이탈리아 레스토랑 ‘논나’ 주방장 [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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