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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3 19:03 수정 : 2008.11.03 19:03

한 달에 두 번 있는 지역도서관의 주부독서 모임에 2년째 참여하고 있다. 모임에 나오셔도 거의 말씀이 없으신 회원이 계시다. 꼬박꼬박 나오시던 분이 웬일인지 두어 달 나오시질 않았다. 평소 먼저 말을 하는 법이 거의 없으신 그분이 두 달 만에 나오셔서는 말씀을 먼저 건네시고 표정도 무척 밝으셨다.

“제가 뭐 하나 물어볼게요~. 엄마가 임신을 했어요. 자식들이 전부 장애를 가지고 있고, 뱃속에 아이도 낳으면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그런데 뱃속 아기는 너무 세상 밖을 구경하고 싶은 애고 설령 태어날 때는 정상이더라도 자라면서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어요.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내리겠어요?”

아이가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낳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으냐~그래도 잉태한 생명인데 어찌 그러냐~ 의견이 분분했다. 그분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 말씀 하셨다. “이렇게 태어난 애가 베토벤이래요~.”

그분의 이야기는 두 달간 모임에 빠지게 된 사연으로 이어졌다.

“제가 두 달 동안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연습했어요. 꼬박 두 달을 한 곡에 매달린 덕에 이젠 끝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됐어요. 월광소나타는 남편이 무척 좋아하는 곡인데 한번 근사하게 연주해 주고 싶었거든요. 어느날 퇴근한 남편에게 월광소나타를 연주해줬는데, 무사히 마치고 나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더라구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내가 몇 번이나 느껴봤을까? 별로 없었더라구요. 그래서 여기 와서 자랑하고 싶었어요. 피아노 선생님이 “사랑의 힘입니다” 하고 한마디 하시더라구요.”

쉰 중반을 훌쩍 넘겨버린 이분은 작년에 딸을 출가시키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에 회원들에게 차 한 잔 들고 가길 권해 방문한 적이 있는데 부끄러움이 많아 말 없으시던 그분이 피아노 연주를 해주시겠다고 피아노에 앉길래 깜짝 놀랐다. 어설픈 피아노 연주이지만 땀까지 흘려가며 잘 돌아가지 않는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다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분의 말씀이 끝나자 다들 그런 벅차고 가슴 설레던 경험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다들 가슴속에 미처 크지 못하고 메말라버린, 사소하지만 포기하지 못한 꿈들의 시원한 물줄기를 맞은 듯한 표정들이었다.

윤은주/82쿡닷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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