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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5 18:51 수정 : 2008.11.0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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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얼마 전 온 가족이 강화도에 제철이라는 대하를 먹으러 갔습니다. 어디로 갈까 맛집 정보를 뒤지다가 깔끔하게 단장된 한 식당의 누리집을 찾아냈죠. 반짝거리는 새우 사진 위의 ‘늘 한결같은 서비스와 청결’이라는 소개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습니다. 식당 바닥부터, 테이블, 그릇까지 으! 다시 생각하기도 싫네요.

대식구가 그 멀리 찾아간 곳에서 도로 나올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주문한 그날의 화룡점정은 대하와 함께 시킨 전어였습니다. 한 접시에서 무려 두 가닥이나 나온 길고 검은 머리카락. 종업원은 태연하게 새우 수염이라고 하더군요. 회색의 새우 수염이 새까맣게 변하다니 그 새우, 회춘이라도 한 걸까요?

커버스토리로 쓴 슬로푸드 운동의 슬로건은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먹거리입니다. 깨끗함이라 해서 깨끗하게 씻어 위생적으로 조리하자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엄청 거창하군요. 생산과정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니까요.

슬로푸드를 고민하자면서 할 말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어떤 음식이든 깨끗하게라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유기농 먹거리 사다가 인공 조미료 넣지 않고 음식 해먹으면 뭐 하나, 출근 후 점심식사는 재활용 반찬일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각종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멀쩡한 식당들의 그 난감한 주방을 보노라면 이렇게 먹으면서 30년 넘게 큰병 걸리지 않고 살아온 제 자신이 기특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불안에 떠는 먹거리 소비자들을 위한 해결책이 하나 나온 것 같기는 합니다. 식당이나 식재료 공장의 심각한 위생 실태를 고발하는 데 앞장서 온 한국방송의 <좋은나라 운동본부>가 가을 개편을 맞아 폐지된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주방 뒤는 이제 잊고 기왕이면 기분 좋게 먹자는 말일까요? 소비자의 몸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배려하는 공영방송의 결정이 가상할 뿐입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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